Opinion_peter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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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이야기_각주구검, 견강부회, 주어없음.

HMM은 한국 유일의 국적선사입니다. 국가가 경제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 국적 선사가 보태주는 힘은 상당합니다. 해당 국가가 한국처럼 수출 주도형 국가인 경우에는 굳이 그 기여를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국적 선사의 존재는 물류 대란의 상황에서 국내 산업에 중요한 방파제로 기여합니다. 지난 COVID-19 발 물류 대란 시기 HMM의 활약은 이를 잘 뒷받침하는 사례입니다.

과거 한진해운을 허무하게 떠나보낸 뒤, 남은 현대상선(현 HMM) 하나만은 지켜내고자 했던 경영진의 결의와 결과적으로 오늘날 회사의 정상화를 이뤄낸 그들의 성취는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그 과정에서 회사에는 큰 암덩이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공적자금 투입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입니다.

지금 HMM에 쌓여 있는 CB와 BW가 모두 전환되면 그 규모는 5억 3천600만 주에 달합니다. 이는 올 상반기 기준 HMM이 지금껏 발행한 총 주식 수(4억 8천900만 주)를 초과합니다. 이는 지금껏 HMM이 발행, 유통한 주식이 기업의 주인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전혀 결정적이지 않음을 함의합니다.

이 기형적인 구조가 산은과 해진공에게는 꽃놀이패일지 몰라도, 그외 모든 주주에게는 그저 거대한 암덩어리입니다. 이 구조 덕에 지금껏 발행된 HMM의 주식은 실상 반쪽짜리라는 오명을 짊어지고 있으며, 어떠한 이유로 주가가 올라도 그것이 고스란히 금융비용(파생상품평가손실)로 기업의 재무제표에 먹칠을 합니다. 실제로 2021년 HMM의 파생상품평가손실은 2조 원에 달합니다.

그러나 지금 HMM을 괴롭히는 암은 수술이 가능한 병입니다. 지금 HMM이 보유한 모든 CB · BW를 조기상환하고도 한참이 남는 수준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산은과 해진공이 자기가 보유한 CB· BW를 전환하지 않고 조기에 상환받기로 결정한다면 HMM은 지금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산은·해진공의 대답은 “그렇게 하면 배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적극적으로 이익 극대화를 위한 움직임을 가져갔고, 결과적으로 많은 이익을 거뒀습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두 공기업 외의 모든 주주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말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두 가지 이슈— 공적 자금의 투입 목적, 산은·해진공의 존재 의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먼저, HMM에 투입된 막대한 공적 자금은 무엇을 위해 투입되었을까요? 당연히 기업의 정상화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산은과 해진공은 왜 HMM을 정상화하려고 했을까요? 보다 정확하게 질문을 하자면, ‘왜 국가가 HMM 살리라고 산은과 해진공에 돈을 줬을까요?’

어려운 상황에 놓인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만약 그러한 투자를 집행한 민간기업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면 ‘저평가’, ‘턴어라운드’ 같은 멋진 단어로 꾸며진 그들의 Investment Highlight 스러운 그들의 답변은 결국 본질적으로 ‘살리면 돈이 되니까’일 것입니다.

반면 산은과 해진공의 답변은 그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고, 대표가 청문회에 끌려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아마 반드시 달라야만 할겁니다.

여기서 제가 주제넘게 두 회장님께 하나의 모범 질답을 드려봅니다.

Q. 당신의 쩐주인 국가가 왜 HMM 살리라고 당신에게 돈을 줬을까?
A. HMM이 대한민국에 필요하니까.

네. 산은과 해진공은 ‘공기업’입니다. 다시 말해 둘은 모두 본질적으로 국가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사실상 지금 산은과 해진공의 스탠스를 대변하는 이동걸 전 산업은행장의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배임”이라는 주장은 제 기준에서는 겉만 번지르르하지 본질적으로는 우스꽝스러운 궤변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들이 말하는 “이익”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고 그 저의의 순수성에 대해서도 불신합니다.

산은과 해진공에게 있어 "이익"이란 그들의 재무제표에 찍히는 숫자로 평가되는 그들의 영업실적일까요? 단순히 그것만은 아닐 것이고 당연히 그것이 최우선은 아닐겁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공기업이니까요.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Vulture fund의 자격으로 HMM에 들어간 것처럼 말입니다.

HMM에 쌓인 수많은 CB·BW를 조기상환하지 않고 전환하는 결정에 의해 소액주주와 정부는 주가 하락에 따른 재산피해를 입었고, 민영화로 향하는 길은 꼬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선된 것은 산업은행과 해진공의 영업이익 뿐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연말 성과급 기준과 조응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제가 느끼기에는 두 기관의 존재의의와는 전혀 합응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이번에 하팍로이드를 숏리스트에서 탈락시킨 일 역시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팍로이드의 탈락은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팍로이드는 원매자 중에서 유일하게 HMM을 인수할 체급이 되는 기업이었고, 향후 운영에 있어서도 이미 동종 사업을 영위하는 글로벌 대기업이라는 점에서 타 후보를 압도합니다. 인수에 대한 Rationale 역시 싸구려 돼지 비계처럼 여러 구차한 내러티브를 끼워놓은 다른 후보들의 것 대비 훨씬 담백하고 명징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요 언론은 해당 탈락 건에 대해서 전혀 놀라지 않는 기색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숏리스트가 나오기 이전부터 언론계는 하팍로이드의 탈락으로 컨센서스를 거의 통일했습니다. 당시 그들이 꼽은 이유는 본질적으로 단 하나, 하팍로이드가 외국계 기업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국적 선사의 국적을 지키는 것은 국가에게 일정 부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seller 진영, 정확히는 산업은행과 해양산업진흥공사가 하팍로이드를 숏리스트에서 탈락시킨 일은 잘못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팍로이드를 단칼에 잘랐다기엔 숏리스트 중 그보다 더 나아보이는 인수자가 없었습니다.

지금 숏리스트로 언급되는 곳은 하림-JKL·동원·LX인데, 세 기업 모두 HMM를 인수하기에는 체급이 부족합니다. 현금성 자산만 따져도 각 1.1조/5,000억/4,000억 원에 불과합니다.

LX나 동원은 자금 측면에서는 솔직히 이름을 꺼내기도 민망한 수준이고, 셋 중에서는 1.1조에 JKL 컨소까지 있는 하림이 그나마 상황이 낫습니다. 그래도 5-7조로 예상되는 HMM 매각가에 비하면 택도 없는 수준입니다(현금성자산 1.1조 + 차입한도 1.1조 + JKL 투자). 게다가 하림은 팬오션, NS홈쇼핑 등을 모 그룹 부실 계열사 살리는 데에 악용한 전례도 있는 ‘블랙 기업’입니다.

이렇듯 세 국내 기업의 HMM 인수 시도가 멸치가 고래 먹으려는 꼴이다 보니 저는 그들이 HMM이라는 기업보다는 당장 그 장부에 있는 자산을 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HMM이 속한 해운업이 경기를 엄청나게 타는 산업이고, 지금 그 downturn의 초입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장부에서 빼먹을 것만 빼먹고 과도한 차입 + 자체 체급의 부족으로 예정된 불경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당초 HMM을 살린 목적, 민영화를 꾀한 목적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팍로이드를 보면, 하팍로이드는 재정적으로도 가장 안전하고 업력도 길며 악의의 가능성도 가장 낮은 인수 후보자입니다. 또한 외국계라는 흠을 극복하기 위해 혼자 인수 금액을 더 높게 부를 가능성도 낮지 않습니다. 이는 모두 주주 이익에 부합합니다. 배임은 오히려 이런 원매자를 아예 숏리스트에서부터 배제한 일에 가깝지 않을까요?

이런 후보자를 단순히 ‘외국 자본이라서’, '나중에 물류 대란 때 문제 생길까봐', ‘실사 과정에서 데이터만 빼먹고 도망갈까봐’ 숏리스트에서도 제외한다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언급된 위험은 자본의 국적을 제외하면 모두 하림/동원/LX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산은과 해진공이 국내 바이어를 고집하는 이유가 그들이 CB와 BW로 이익을 착취해도 가만히 있을만한 기업이라서, 다시 말해 자신의 이익에 가장 잘 부합하는 바이어라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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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가 기대하는 최선의 상황은 산은과 해진공이 이번 입찰을 유찰시키고 CB와 BW의 상당수를 조기상환하여 매물을 손질한 뒤 진짜 국내 ‘대기업’에게 매각하는 길입니다. 외국계를 배제한 이유는 해진공이 어떻게든 외국계는 피하려고 할 것 같아서입니다.

끝으로, 산은이나 해진공에도 사정은 많을겁니다. 성공적인 ’회수‘에 대한 정계의 압박이 있었을 수도 있고, 기타 제가 모르는 이유들도 아주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논리와 합리, 다른 주주에 대한 존중은 지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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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시대 PE 살아남기 (1)<자금 조달>_뜨거운 여름밤은 갔다

08 GFC 이후 10년이 넘게 지속한 저금리 시대, 속칭 ‘The era of easy money’는 2019년 경 슬슬 그 황혼의 기미를 보였으나, 2020년에 발생한 COVID-19 팬데믹은 외려 그 흐름을 절정까지 되살렸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자본 시장의 전례없는 활황을 빚었고, 이 글의 주인공인 PE(Private Equity, 사모펀드) 역시 그 은총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쉬운 자금 조달과 높은 엑싯 멀티플, 활성화된 transaction 속에서 전문 투자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축제는 끝났습니다. FED는 17개월 동안 11번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2021년 말 0.07%에 불과했던 미국의 기준 금리는 오늘날 5.5%에 달합니다.

이제 상황은 2년 전과 정확히 반대입니다. PE 운영의 전반적인 난이도가 전반적으로 크게 상승했습니다. 지금 시장은 PE의 자금조달에서부터 운영, 회쉬에 이르는 전체 밸류체인 전반에서 모두 최악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그 밸류체인의 맨 앞과 맨 끝인 자금 조달과 회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선 자금 조달의 측면에서 PE가 겪고 있는 난관의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 높은 차입 비용과 펀드레이징 난이도의 상승—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높은 차입 비용에 대해 말씀드리면, PE가 투자를 위해 활용하는 인수금융의 금리는 상기한 열한 차례의 금리 인상을 거치며 기존 통상적인 수준을 크게 넘어섰습니다.

한국의 경우 COVID-19 시기 3~4% 선을 지키던 인수 금융 금리는 올 연초 10%를 넘기기도 했고, 미 연준의 금리 동결 분위기에 맞춰 조금 낮아진 지금도 7~8% 수준의 높은 인수 금융 금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레버리지의 활용이 PE 운영의 기본적인 전략이라는 점에서 이는 펀드에 가장 큰 명시적인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다음으로 펀드레이징의 경우, 그 난이도가 올라간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최근 PE 투자의 난이도 자체가 크게 올라간 것입니다. 저금리 등 산업을 뒷받침할 tailwind가 제거된 시점에서 LP가 PE에 대한 출자에 더 선뜻 나설거라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에 대한 또 다른 이유로는 많은 기관이 지난 easy money eara, 특히 최근의 COVID-19 동안 PE에 대한 출자를 많이 늘려 놓았다는 점이 있습니다. 즉 그들의 포트폴리오 내 해당 asset class의 몫은 진작에 거의 꽉 찼습니다. 실제로 Private Equity International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세계 기관 투자자 중 47%가 현재 PE에 자산이 과하게 배분되었다(overallocated)고 응답했습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펀드레이징을 위한 전반적인 환경이 거칠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최근 세계 자본 시장의 곳곳에서 그러한 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몇몇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Preqin에 따르면 이번 2Q23 미국 PE의 펀드레이징은 작년 동 분기 대비 35% 줄었고, 이는 지난 2Q18 이후 최저점에 해당합니다. 싱가포르 GIC는 공개적으로 PE 비중 확대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고, 일본의 경우에도 기관의 PE에 대한 appetite가 많이 줄었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해당 그러한 현상이 전세계에 공통으로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당장 한국만 보아도 미국 시장의 경향과는 달리 금년 국내 기관투자자의 출자 사업이 적극적으로 재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1분기 PEF 출자 약정액은 5조 1629억원으로, 예년 4분기 대비 4배에 가까운 흥행을 보였습니다. 때문에 한앤코 등 해외LP를 위주로 받던 PE가 최근 국내LP 출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경우에도 2023년 상반기 기준 총 펀드레이징 금액이 490억 유로인데, 이는 작년 한 해의 성과(682억 유로)를 생각하면 꽤 놀라운 결과입니다.

지금 미국과 한국, 유럽이 보이는 괴리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국과 유럽의 기관 투자자의 경우 이미 PE에 “overallocate” 한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과는 달리 아직 PE를 위한 room이 남아있는 편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입니다.

일례로 한국 국민연금의 사모투자(펀드) allocation은 5.6%로, 싱가포르 GIC(17%)와 Temasek(42%)은 물론 미국 public pension 산업 평균 (13%)의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칩니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 펀드레이징을 위한 room이 아직 꽤 남아있다고 말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사실 펀드레이징 난이도에 있어 그 지역 별 차이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은 극단적인 대형 PE 선호 경향, 소위 말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앞서 말한 PE업의 난이도가 상승한 것에 기인합니다. 투자의 난이도가 올라간 만큼 검증된 트랙 레코드를 가진 소위 ’명문‘ GP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죠. 이는 KKR(USD 80bn 규모 유럽 buyout 펀드 결성), Bain Capital(USD 6bn 규모 아시아 펀드 결성) 등의 국외 메가PE의 사례와 최근 약정액 면에서 진전을 이룬 국내 대형 PE(IMM PE, 스틱, 스카이레이크, UCK 등)의 사례로 뒷받침됩니다.

이렇듯 지역/규모 별로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PE 산업이 자금조달 면에서 지난 황금기 대비 여전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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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시대 PE 살아남기 (2) <회수> _팔기 싫지만 현금은 먹고 싶어

다음으로 회수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면, 지금 미국/유럽의 주요 PE는 현금 회수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현금 회수에 집중하는 이유는 지금은 신규 펀드를 흥행시키 위해서 기존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펀드의 흥행은 주요 LP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모든 관심을 쏟는 지표는 DPI(Distributed to Paid-in Capital)입니다. DPI는 LP capital call(LP가 펀드에 준 돈) 대비 LP에게 지급된 proceeds를 의미하며, 펀드가 LP에게 얼마나 beneficial했는지를 평가하는 지표입니다.

LP가 DPI를 중요시하게 된 데에는 역시 금리 인상기를 거치면서 시장이 불경기를 맞은 탓이 큽니다. 지금껏 호시절에 돈 많이 넣어놓았으니 이제 슬슬 너희의 성과를 보여주라는 것이죠. 따라서 PE는 펀드의 흥행을 위해서 반드시 LP에 대한 distribution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PE가 처한 상황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의 형국으로, ’어느 때보다 회수가 간절하나 회수 환경은 최악인‘ 상황입니다.

일반적으로 회수는 실적에 멀티플을 곱해 나온 가격으로 이루어지는데, 지금은 실적 지키기도 빠듯한 상황에 멀티플까지 금리 인상으로 인한 시장 침체의 영향으로 하락하는 눈물나는 시기입니다.

지금 만약 정말 선택권이 있다면 굳이 이 상황에 회수를 하고 싶어하는 PE는 많지 않을겁니다. 많은 인수가 발생한 얼마 전의 COVID-19 시기가 역사상 가장 높은 멀티플로 매수가 일어난 시점이란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LP 투자자들은 지금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이제 내게 숫자가 아닌 돈을 가져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 많은 PE는 눈물의 창고정리 없이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원합니다. 여기에 적합한 마법같은 전략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전략에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옵션은 Continuation Fund입니다. 이는 펀드를 하나 더 파서 기존 펀드의 연기를 사실상 연장하는 방법으로, 미국에서는 KKR, Blackstone 등 대형 PE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전략입니다. 이는 GP 친화적인 정책이라는 점에서 지금 가장 선호할 만한 전략입니다.

그러나 이는 바로 그 점 때문에 LP와의 이해 상충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보통 Continuation Fund는 기존 투자자에게 cash out or roll in의 선택지를 주는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금 많은LP는 GP의 바람과는 달리 cash out을 바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현재 GP는 애초에 그 줄 돈을 회수 못해서 이 고생을 하는 상황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Continuation Fund라는 선택지는 LP가 반 쯤 강제로 받아들일 경우를 제외하면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두번째 옵션은 Minority Sales입니다. 이는 갖고 있는 기업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여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기업의 지배권을 놓지 않으면서 당장 필요한 현금을 획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향후 엑싯에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고, 무엇보다 지금 시장의 PE가 대체로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보니 secondary market이 전반적으로 많이 침체되어 있어 현재 기준 거래 성사의 난이도가 다소 높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세번째 옵션은 CFO(Collateralized Fund Obligation)입니다. CFO는 펀드를 번들로 묶어 증권화하여 기관에 판매하는 것으로, 이 역시 자산의 매각 없이 현금을 유입하는 효과를 가집니다.

한국은 아직 CFO의 활용이 미진한 관계로 미국의 케이스를 빌어 말씀드리면, 지금 CFO의 가장 큰 단점은 현재 주 수요자의 appetite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CFO는 그 구조상 포트폴리오의 현금흐름으로 우선 이자 비용을 지불하고 leftover 중 일부를 equity tranche에 제공합니다. 해당 layer는 보통 20% 중반대의 수익을 기대하는데, 보통 보험사가 가장 큰 수요를 담당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미 금융당국의 CFO 규제 위험이 높아지면서 보험사가 그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미국의 PE 역시 해당 전략을 상황 타개 목적으로 당초 계획만큼 적극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네 번째 옵션은 그 악명 높은 Dividend Recapitalization(“Dividend Recap”)입니다. 이 대목에서 의아함을 느끼실 분이 많으실겁니다. 왜냐면 Dividend Recap은 차입을 기본으로 하는데, 그것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배경인 cheap debt era는 진작에 끝났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최근 금리가 안정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dividend recap이 조금씩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KKR(Atlantic Aviation, 750m), Blackstone(PLC, 400m), Carlyle(Nouryon FInance, 750m) 등 메가PE가 dividend recap을 점차 재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차입 환경은 영 좋지 않습니다. 배당을 위한 대출 금리는 2021년 초 YTM 4.1%를 밑돌았으나 2023년 3월에는 11.5%까지 올랐고 7월에는 조금 떨어졌지만 여전히 GFC 이후 최고 수준인 10.8%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dividend recap이 다시 머리를 든 것은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압박이 산업 전반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미국 PE의 엑싯은 작년 대비 63% 하락(321.4bn)했고, 올 상반기 엑싯 규모도 고작 139.7bn에 그쳤습니다.

이렇듯 여전히 차입 비용이 높은 상황에서 발생한 dividend recap의 부활은 asset sale이 전혀 내키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 펀드를 위해 투자자에게 그 신용의 증표로 돈을 돌려주는 것은 꼭 필요한 미국 PE의 절실함을 보여줍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dividend recap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 PE가 겪는 많은 어려움을 한국 PE도 공유한다는 점에서 dividend recap의 움직임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이 타 선진국 대비 배임 기준이 엄격한 국가라는 점은 감안해야겠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옵션은 NAV loan입니다. NAV loan은 펀드가 펀드의 포트폴리오 NAV를 바탕으로 현금을 차입하는 구조의 금융상품으로, 추가 자본 납입을 요청할 필요 없이 펀드에 현금을 유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집니다.

최근 NAV loan에 많은 이목이 쏠렸는데, 그 까닭은 근래 들어 대형 글로벌 PE가 LP에게 돈을 돌려주기 위하여 해당 대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Carlyle은 최근 골드만삭스와 내부 금융 유닛을 이용하여 자사 미국 오피스의 유럽 바이아웃 펀드를 기반으로 10억 유로 이상의 NAV loan을 당겨 LP에게 지급했습니다. 아시아권에서는 Softbank가 비전펀드2를 바탕으로 NAV loan으로 Apollo로부터 40억 달러를 빌려 돈을 모회사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NAV loan에 대해 유념해야 할 점은 그것이 절대 저렴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을 기준으로 NAV loan의 일반적인 조건은 3-5년 만기, 최대 30% LTV, 6-7%p + base rate 이상의 금리를 PIK(Paid-In-Kind) 옵션과 함께 floating rate로 제공하는 수준입니다. 단순히 금리만 따지면 최근 기준 최소 10%에서 최대 3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아도 절대 저렴한 조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NAV loan이 최근 날개를 펴기 시작한 데에는 금리 인상으로 인해 M&A 시장이 침체하고 리파이낸싱 비용이 증가한 것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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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원래 private credit 시장의 작은 한 요소에 불과했던 NAV loan은 고금리에 따른 M&A 시장의 침체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 올해는 시장의 크기가 역대 최대 규모인 210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세계 금융 시장에서 NAV loan의 전망은 밝습니다. 2022년 세계적인 메가펀드 Oaktree에 인수된 계열사이자 대표적인 NAV loan lender인 17 Capital은 해당 시장의 성장이 장기적으로 yoy 30-50%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아직 NAV loan의 활용은 다소 요원한 상황입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배임 문제입니다. 한국은 피인수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담보제공형 LBO가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는 등 PE의 담보 활용에 보수적인 편입니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인수대상회사의 지분만 담보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MBK/한앤코/IMM 등의 대형 PE가 펀드의 NAV를 담보로 큰 대출을 당겨 활용하는 것은 법적인 위험이 있는 일입니다.

지금까지의 긴 내용을 요약하면 지금 상황에서 PE가 LP에게 자산 매각 없이 돈을 distribute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1) Continuation fund, (2)Minority Sales (3)CFO (4)Dividend Recap (5) NAV loan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1), (2), (4)에 그치고, 그 가능성을 보다 엄밀하게 따지면 (2)와 (4) 정도가 현실적인 옵션으로 남겠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이러한 leveraged distribution이 발생한 배경—향후 펀드레이징을 위한 DPI 향상—이 현재 미국 대비 펀드레이징 환경이 훨씬 온난한 한국의 경우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대형 PE에게도 회수에 대한 압박은 이전의 황금기보다는 훨씬 거셀 것입니다. 그러나 앞선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최근 한국의 주요 LP는 PE 출자를 줄이지 않는 경향이 있기에 미국의 실정을 완전히 한국에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아직까지는 한국의 기관은 PE, 특히 그 중 대형 PE에 돈을 좀 더 맡기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학문의 즐거움을 느껴 기분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언젠가 국내외 PE 관련 뉴스를 읽으시다가 어떤 대목에서 순간 제 글을 통해 스쳐간 내용이 문득 떠오르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할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남은 하루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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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보는 Cost of Debt > Cost of Equity case

Cost of Debt(“Kd”)가 Cost of Equity보다 낮다는 것은 재무를 배울 때 기본적으로 배우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특정 상황에서는‘ Kd가 Ke보다 높은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해 막연하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관련한 내용을 한번 정리하고자 글을 작성합니다.

먼저 상기했듯이 이론적으로 Cost of Debt은 Cost of Equity보다 ’거의 항상‘ 낮습니다. 그 이유는 1. Debt 투자자가 기대하는 수익이 Equity에 비해 낮다는 점과 2. Debt이 tax shield를 제공한다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전자는 Debt이 본질적으로 ‘계약으로 몇몇 안전장치를 제공하는’ 금융상품이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현상입니다. 이는 단순한 trade-off의 관계인데, Debt은 안전장치를 제공하고 투자자는 그 반대급부로 상대적으로 낮은 financing 비용을 제공하는 식입니다.

Debt이 제공하는 안전장치는 삼중구조로 구성됩니다. 그 첫번째는 1)원금의 상환과 이자의 지급, 또는 최소한 그를 위한 노력이 회사의 의무로 약속되어 있다는 것, 다음 두번째는 그 노력을 강제하기 위하여 2) 그것에 다른 투자 유치 수단보다 Senior한 Rank를 부여한다는 것이며, 마지막 세번째는 3)위 두 사항이 법률에 의해 엄격히 강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상기한 Debt의 삼중구조 안전장치는 위험 회피라는 분명한 메리트를 작용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더 낮은 기대 수익을 받아들일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그 결과로 더 저렴한 파이낸싱을 가져갈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후자는 회계법이 제공하는 편익으로, Debt에 대한 이자의 지출이 tax-deductible하다는 점에서 실제 Debt에 대한 회사의 이자 지출이 (이자)*(1-세율)의 값으로 줄어듦을 의미합니다.

Equity financing의 경우 이러한 혜택을 볼 수 없기에 Debt의 tax shield는 Ke가 Kd보다 낮아지기 힘들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실제 현실의 경우 일부 극단적인 케이스에서 Kd가 Ke를 초월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하고, 이는 이론적으로 가능합니다. 오늘 이 글의 목적은 그 이론적인 케이스를 소개드리는 데에 있습니다.

첫번째 케이스는 회사가 financial distress 상태에 놓이는 경우에서 발생합니다.

회사가 financial distress에 놓인다는 것은 해당 회사가 더 이상 채무를 이행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임을 의미합니다. 회사가 distress에 놓이게 되면 Kd와 Ke 모두 distress premium을 적용받게 됩니다.

먼저 Ke가 높아지는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면, 흔히 알려진 CAPM 공식(Ke=Risk-free rate + Levered Beta*Equity Risk Premium)으로 Ke를 계산하는 일반적인 기업과 달리 distress에 놓인 기업은 CAPM에 회사 상태에 따른 distress premium을 적용하는, 일종의 expanded CAPM을 적용받습니다.

Distress premium의 활용에는 일반적으로는 Altman Z-score에 따른 급간 구분을 활용하는 듯 하지만, 보통 어느 정도의 재량권이 부여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회사의 상태가 안좋을수록 그 premium이 크게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CAPM에서 Equity의 위험성을 반영하는 데에 사용하는 베타(beta)또한 Distress 상태 기업의 Ke를 크게 높이는 주요 요인입니다.

이는 베타의 계산 공식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CAPM의 계산에는 Levered Beta가 사용되는데, 그 공식은 unlevered Beta(1+(1-세율)(D/E))입니다.

Distress 상태에 놓이거나 그 위기에 있는 기업은 보통 D/E가 높고 영업실적이 세금도 제대로 못하는 수준입니다. 이 경우 기업은 1.D/E 자체가 높고 2.(1-세율)의 tax shield도 (1-0)의 값으로 상쇄되어 버려 다른 정상 기업에 비해 확연히 높은 비정상적인 Beta를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보시면 Kd가 Ke를 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래도 Ke가 높은데 말씀드린 distress 상태가 되면 그 Ke조차 엄청나게 올라가니까 말입니다. 실제로 distress 상태 기업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경우 Ke가 Ke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그 예외적인 케이스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distress 상태의 회사의 Kd는 보통 Risk-free rate + Default spread로 계산되는데, 회사가 CC등급 이상의 채권조차 제대로 발행하지 못하는 상태인 경우 이 Default spread가 12%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 경우 Kd가 Ke보다 더 높아지는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번째 케이스는 Debt 투자자와 Equity 투자자 사이의 appetite 간극이 극단적인 경우에서 발생합니다. 이는 극초기 기업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극초기 기업의 경우 신용평가가 무의미한 수준의 원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Debt 투자자에게 그들의 채권은 큰 매력이 없습니다.

반면 그들의 Equity은 일종의 로또에 가까운 속성을 지닙니다. 이는 투자 금액을 다 잃을 확률이 높지만 운이 좋으면 끝없는 상방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환 확률도 낮은데 상방도 막혀있는 Debt보다 훨씬 투자 메리트가 있는 투자 상품입니다.

이 경우 해당 기업의 Ke는 Kd보다 높을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Kd가 Ke에 비해서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일반 기업의 Debt이 안전장치를 매개로 저렴한 파이낸싱을 가져왔다면, 극초기 기업의 경우 Equity가 그 로또적인 성격을 매개로 저렴한 파이낸싱을 가져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정부 개입으로 인해 Debt의 rank가 흔들린 경우입니다. 최근 Jurisdiction 과정에서 그 Equity보다 낮은 rank로 강등되어 write-down 처리당한 Credit Suisse의 AT1 채권이 그 예시입니다.

이 경우 Debt의 기본적인 전제가 부정당했다는 점에서 Kd<Ke의 원리의 예외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상상의 수준에서 머무른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1. CS의 AT1 케이스는 워낙 특별한 일이었고, 2. AT1 자체도 특별한 채권이며, 3. 그 CS의 경우에도 Kd가 Ke보다 높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연한 궁금증으로 관심이 생겨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꽤나 즐거웠습니다. 여러분도 즐겁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오늘 남은 하루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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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모두 새해에는 더 많은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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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_돼지 목에서 진주 빼내기

고된 힘싸움 끝에 마침내 돼지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를 꺼냈습니다. 이제 목걸이의 묵은 때를 벗기고 다시 잘 세공하여 새 주인에게 더 비싼 값으로 팔기만 하면 됩니다. 근데 그게 생각보다 마냥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2024년 1월 4일 대법원은 지난 2021년 이래 길게 이어진 한 앤 컴퍼니(이하 “한앤코”)와 홍원식 회장 사이의 남양유업 경영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제 남양유업은 홍원식 회장(이하 “홍 회장”)의 것이 아닙니다. 사실 누가 봐도 진작에 이렇게 되었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드디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앤코의 남양유업 주당 인수가액은 82만원입니다. 반면 현재 주가는 569,000원에 그칩니다. 그 갭을 메꾸는 데에만 44.1%의 상승이 필요합니다. 갈 길이 꽤 많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홍 회장이 일으킨 난장판의 역할이 큽니다. 시장이 한앤코의 남양유업 인수 소식에 환호했던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도 지긋지긋한 오너 리스크로부터의 해방이었는데, 홍 회장이 일으킨 분탕 속에서 회사가 허우적대는 동안 인수 완결이 지연되며 그 의미가 상당부분 빛을 잃었습니다.

어쨌든 이제 법률적으로는 인수의 상당 부분이 마무리되었으니, 지금부터 펀드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을 잘 수선하여 주가를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지금 남양유업의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처참한 영업실적이고, 다른 하나는 <2>역사에 남을 수준의 오너 디스카운트입니다.

따라서 남양유업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의 달성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매출을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홍家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 일입니다.

남양유업 재무제표의 결점은 정말 눈에 잘 보입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누가 봐도 매출입니다. 2012년 1조 3천억이 넘었던 회사의 매출은 지난 2023년 3분기 LTM기준 1조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회사는 지난 아주 조금의 영업이익을 낸 2019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영업이익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보통은 적자의 범인을 비용에서 찾지만, 그건 남양유업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남양유업은 지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꾸준히 비용 상승을 억제해왔으며, 해당 기간 동안 비용의 증가분은 실제로 필수적 비용의 자연적인 상승 정도만 반영한 수준이었습니다. 즉 회사의 현재 비용 구조는 이미 상당 부분 긴축된 구조입니다. 남양유업의 사업적 특성을 감안할 때, 여기서 더 줄이는 방법은 아마 회사의 체급을 줄이는 것 정도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건 회사의 새 주인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다시 원인으로 돌아가서, 왜 회사는 꾸준히 적자였을까요? 그 이유는 자명하게도, 회사가 사업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지출 이상의 매출을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기초 대사량보다 열량 섭취가 낮은 꼴이죠.

남양유업의 매출 부진의 중심에는 분명히 홍 회장에 의해 발생한 회사 브랜드 가치의 심각한 훼손이 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꽤 많이 흘렀습니다만, 여전히 많은 국민이 2010년대 남양유업의 추태에 대해 기억합니다. 이렇게 악명의 수명이 늘어난 데에는 회사와 홍 회장이 꾸준히 여러 사건을 통해 국민에게 꾸준히 그 기억을 상기한 공이 컸습니다.

다만 회사 이미지의 훼손 하나만으로 지금의 매출 부진이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사태의 수습이 좀 더 간단했을 터이지만, 아쉽게도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내부적 문제 외에 남양유업이 겪는 삼중고는 [1]원유 가격의 상승 [2]우유 시장의 개편 [3]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현상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남양유업 등의 유제품 업계가 매입하는 원유의 가격은 낙농진흥회가 결정하는 원유기본가격에 따라 정해집니다. 해당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 2011년 834원/L이었던 원유기본가격은 2023년 기준 음용유용은 1,084원/L, 가공유용은 887원/L에 이릅니다.

원유기본가격의 상승은 사실 억제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낙농업은 국가기반사업 중의 하나이고, 한국의 낙농업 환경은 수익성이 좋지 않은 편이라 꾸준히 기본가격을 올려주지 않으면 산업의 지속에 난관이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남양유업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당연히 그 인상분은 회사에 비용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직관적인 해법은 비용의 증가분을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현재 국내의 많은 소비자가 한국의 높은 우유 가격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연결되는 것이 서두에 말씀드렸던 [2]우유 시장의 개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원유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 탓에 현재 한국의 우유 가격은 비싼 편입니다. 그를 증명하듯 국내에서 생산된 백색 시유의 인구 당 평균 소비량은 2012년 28.1kg에서 2022년 26.2kg으로 10년 사이 7% 가까이 하락했습니다. 우유가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상당히 유의미한 하락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우유 전체의 소비량이 급감했느냐, 그건 아닙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우유 소비량은 2012년 3,359,000톤에서 2021년 4,448,000톤으로 증가했습니다. 국내산 우유의 부진과 전체 소비량의 상승 사이의 갭을 채운 것은 다름 아닌 수입산 우유입니다. 수입산 우유의 국내 소비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2년 1,248,000톤에 불과했던 수입산 우유 소비량은 2021년 기준 2,414,000톤까지 증가했습니다.

수입산 우유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가격 경쟁력에 있습니다. 일례로 호주, 뉴질랜드산 원유의 리터 당 가격은 400~500원 수준으로, 1,100원에 이르는 국내산 원유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입산 원유의 질이 국내산 대비 심각하게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시장은 빠르게 수입산 우유를 중심으로 재편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오는 2026년부터 발효되는 미국/EU 유제품의 관세면제는 분명 이러한 흐름을 더더욱 가속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전체적으로 남양유업에 호의적으로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남양유업도 수입산 원유의 면세에 따른 수혜를 입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남양유업은 (1)의무적으로 국내산 원유에 일정 쿼터를 할애해야 하고 (2) 축산업자와의 관계 관리를 이유로 원유 수입에도 불편이 있으며 (3) 결정적으로 회사의 매출에서 흰 우유 제품군의 비중이 높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부정적으로 볼 여지가 더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3]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남양유업에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지 이것이 회사의 전체 매출 중 20%가량을 차지하는 분유류 매출의 전망에 치명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유제품 소비 관점에서 봐도 해당 소비는 연령에 반비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당장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유제품 소비의 빈도가 높았던 시기를 생각하면 대부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실겁니다. 이렇듯, 이미 상당 부분 구체화되고 있지만, 한국의 인구 변화는 사실 남양유업의 미래에 가장 치명적인 독소입니다.

다음으로 <2>오너 디스카운트의 경우, 남양유업이 겪은 오너 디스카운트는 역사에 남을 수준입니다. 사실 해당 문제가 없었다면, 애초에 남양유업이 M&A 매물로 나올 일도 없었을 겁니다.

다만 제가 M&A가 마무리되었음에도 오너 디스카운트가 여전히 회사의 고충이라고 언급한 까닭은 아직 회사가 홍家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그간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여전히 사람들은 남양유업을 악덕기업으로 생각합니다. 때문에 남양유업의 브랜드 가치는 사실상 거의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추락했습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 홍 회장은 모든 법리적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 아직까지 주식 양도를 거부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등 회사를 진흙탕에서 꺼낼 생각이 전혀 없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아쉽게도 남양유업의 오너 디스카운트는 강제 집행으로 홍 회장을 축출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현재 진행형으로 남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안 좋은 얘기들을 많이 늘어놓았지만, 저는 남양유업 인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그렇지 못할 가능성보다 높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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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이 본격적으로 1조 1천억 원 이상의 매출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오너 리스크에 시달리기 전인 2012~2014 시기, 회사의 주가는 한앤코의 인수가 주당 82만원를 웃돌았습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시절이 다른 만큼 같은 상황에서 같은 주가를 이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회사의 주가가 그때만큼 회복할 여지가 있다는 증거로 활용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를 위해서 회사는 앞서 언급했던 두 가지 달성 과제, 前 오너 일가가 남긴 흔적의 말소와 영업 실적의 회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먼저 오너 이슈의 경우 우선 일단 어찌 되었건 홍 회장의 주식만 가져오면 회사의 가장 큰 pain-point이자 이번 인수의 핵심 Investment Highlight인 오너 디스카운트 제거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남양유업 인수가 발표되었을 당시, 뉴스를 보자마자 머리가 멍-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다 좋은데 딱 한가지 큰 결점을 갖고 있는 회사를 그 결점을 깔끔하게 절단하면서 인수할 수 있다니, 솔직히 인수 전까지 그 아이디어를 떠올린 펀드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 놀라웠습니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듯 남양유업 케이스는 한 리스크가 얼마만큼 비상식적으로 거대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가 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그 Investment Highlight 자체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영업실적의 회복을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고려될 수 있을까요? 우선 당장 떠오르는 것은 사명의 변경입니다. 그간 남양유업이라는 이름이 긴 역사를 통해 이룩한 대중성을 포기하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남양유업이라는 이름에 지워진 불명예의 멍에는 지독합니다. 그게 회사 주인이 홍 회장에서 사모펀드 한앤코로 바뀐다고 해서 단기간에 없어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명 Trade-off를 각오해야 하는 결정이지만, 심각하게 고민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남양이라는 이름은 영미권의 ‘Adolf’ 같이 초등학생도 아는 악명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물론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악명에도 사명을 유지하는 옥시레킷벤키저의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경우는 남양의 경우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명 변경의 이슈를 제외하면 당장 떠올릴 법한 것은 프리미엄화 전략입니다. 현재 회사는 지속적인 원가 압박 하에 있지만, 그 비용을 보급형 제품에서 완전 전가하기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금 수준에서도 꽤 격렬한 가격 저항이 있습니다.

따라서 남양유업은 보다 비싸게 팔 수 있는 창구를 최대한 다양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수입유의 공세가 거세질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높은 가격의 고마진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2026년부터 다가올 가격 압박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그게 단백질이 되었든, 분유가 되었든, 그 밖에 치즈, 요거트, 하다못해 카페라떼가 되었든 간에 무엇이든 좋으니 회사의 새로운 페이즈를 여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만약 그것이 삼양의 불닭볶음면처럼 해외에서의 대박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이상의 횡재는 없을 겁니다.

이렇듯 회사가 당면한 과제들의 난이도는 하나같이 다 ‘지옥’ 수준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회사의 브랜드 평판은 최악, 영업실적은 악화일로, 시장 환경도 갈수록 안좋아지는데 인구구조/면세 등 예정된 변화들도 죄다 부정적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어쩔 수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남양유업이 회복할 가능성이 꽤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생각보다 오래 가고 있는 前 오너와의 진흙탕 싸움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기대를 갖고 지켜볼 가치는 충분해 보입니다. 홍원식 前 회장님의 신사적인 퇴장과 남양유업의 눈부신 반전을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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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프로그램_오르간 연주자의 원숭이

춤추는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는 오르간 연주자가 있습니다. 원숭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며 돈을 내는 것을 보고 제가 연주자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계가 실제로 그러한 지에 대한 답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물론 원숭이는 모릅니다.

요즈음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밸류업 프로그램’입니다. 1월 24일 금융위가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언질을 밝힌 이후로 한국 주식 시장은 아직 실체화되지 않은 거대한 ‘보이는 손’의 등장에 대한 대비로 분주합니다. 물론 대부분은 지극히 투기적인 움직임입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사항은 아직 논의 중입니다. 구체적인 결과는 남은 2월 중에 공개될 것으로 예정되나, 워낙 큰 돈이 걸린 일이다 보니 시장에는 매일 새로운 정보가 돌아다닙니다. 아마 그 중에서는 유출 정보와 단순 찌라시가 적당히 섞여 있겠지요. 물론 그에 대한 금융위의 공식적인 답변은 모두 “아직까지 검토한 바 없습니다” 였습니다. 일단 저는 그렇게 믿지 않는 편입니다.

진실에 대한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니 차치하고, 흥미로운 점은 유출된(혹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내용들이 하나 같이 다 엉성하고 일부는 심각하게 멍청하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제 기준에서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언론으로 빠져나온 밸류업 프로그램의 “검토된 바 없는” 세부 내용은 (1)100대 우수기업 인증제도 (2)PBR 인덱스 (3)포이즌필(차등의결권)의 도입입니다. 일단 금융위 어르신들께서는 아직까지 모두 “검토한 바가 없다”고 하시니 필자 소생은 한 명의 소시민으로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먼저 (1) 100대 우수기업 인증제도는 말만 들으면 흡사 국가 공식 리딩방 운영을 보는 듯합니다. 우선 무엇보다 저는 정부 산하 기관에게 우수 기업을 100개를 잘 추려낼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 강한 의심을 가집니다. 사실 애초에 인증제 도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청렴성에 대한 믿음 자체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푼돈이 걸린 신제품 인증에도 뒷돈 받아먹는 사람들이 널렸는데, 적게 잡아도 조 단위의 자금을 좌지우지할 국가 인증 제도의 선정에 비리가 절대 없으리라, 혹은 막을 수 있으리라 가정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순진한 접근입니다.

100대 우수기업 인증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번 큰 문제가 터지면 대한민국에 대한 큰 디스카운트 요인이 된다는 점입니다. 무려 정부가 보증한 우수기업 인증제에 문제가 터지면, 그 나라의 뭘 믿고 투자할 수 있을까요? 문자 그대로 국격을 훼손하는 일이 됩니다.

또한 100대 우수기업 인증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면, 그 주기에 맞춰서 엄청난 규모의 투기 자본이 움직일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테마주 성행이야 이미 보고 있는 일입니다. 이는 시장 건전성을 심각하게 저해합니다.

여러모로 끔찍하게 멍청한 발상입니다. 다행인 점은 금융위 어르신들께서 공식적으로 검토하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역시! 저는 처음부터 한국을 이끄는 엘리트 집단의 시야가 심봉사 수준일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2)PBR 인덱스의 경우에는,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아이디어이며 보다 긴 호흡에서 고민해야 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PBR 인덱스의 문제점을 요약하면, ‘네가 뭘 알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금융위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엄밀히 말하면 시장의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낮은 PBR을 핵심적인 가치평가 요소로, 그래. ROE/주주환원율/현금흐름 고려, 그래. 자사주 비중 미반영, 그래. 다 오답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건 챗지피티에게 맡겨도 프롬프트 몇 개 잘 돌리면 나오는 답변이고,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선정 로직입니다.

PBR 인덱스는 말이 좋아 PBR 인덱스지, 정부 또는 거래소가 고유의 Nifty Fifty를 만들어서 인덱스를 만들겠다는 말입니다. 언론에 레퍼런스로 자주 언급되는 일본의 JPX프라임150이 그 근거가 된 것 같은데, 당장의 성과만 놓고 보면 좋기는 하지만 저는 정부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금융위나 거래소는 시장에서 수염 어루만지다 때 될 때마다 ‘이 놈!’하는 마을 훈장님입니다. 다들 똑똑하시지만 시장의 승냥이 떼처럼 영악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ETF 출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는데, 정부와 금융위 눈치 보는 시기에야 시장 참여자들이 마지 못해서라도 적극적인 시늉을 하며 불판을 달궈주겠지만 나머지 시기에는 글쎄요, 마냥 장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만약에 해당 인덱스의 성과가 영 좋지 않아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 향후 교체된 정권이 이 일을 물린다면, 그 꼴이 얼마나 우스울까요? 혹은 정부가 그게 두려워서 억지로 그 성과를 좋게 만들기 위해 발버둥 치고 그 피냄새를 맡고 투기 자본이 몰려든다면, 그건 또 얼마나 우스울까요? 여러모로 위험이 많은 정책입니다. 더하여 레퍼런스로 삼은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완전히 같지 않다는 점과 가뜩이나 심각한 관치금융이 주식 시장까지 지배할 위험이 있다는 점 역시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3)포이즌필(차등의결권)의 경우에는, 솔직히 말해 완전히 어이가 없는 정책입니다. 포이즌필은 주식에 카스트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일반 주주의 권리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것이 명백한, 오직 최대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정말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개입이 무섭다면, 오너가 마땅한 대응을 하면 됩니다. 한국의 재벌가 2세 3세들이 저 아저씨 무섭다고 엄마 품으로 징징 울면서 달려가는 다섯 살 꼬맹이도 아니고, 굳이 정부가 나서서 차등의결권을 만들면서까지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방어해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건 대다수 일반주주의 권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도,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와는 사뭇 반하는 내용이지만, 오너 일가가 원하는 대로 기업이 휘둘리는 것은 전혀 장려할 만한 변화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행동주의의 악마화로 대표되는 국내 언론의 오너 경영 지상론은 보기 역합니다. 물론 그들도 먹고 살려면 광고를 팔아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말입니다.

지금 한국의 자본시장은 병들었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그 범인은 제도입니다. 지금 한국의 제도는 시장 참여자의 타락을 장려합니다. 상고 갓 졸업한 19살 김철수 군도 쌀집 계산기 몇 번 두드리면 기업의 주가가 오르는 것이 오너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끼침을 알 수 있고, 고등학교 갓 입학한 17살 김영희 양도 한국에서는 시장 윤리의 위반이 갖는 리스크가 그 위해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수많은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오래도록 지적해온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정부가 정말 시급히 움직여야 하는 일은 입법부와 협력하여 법을 고치고 제도를 전면 재편하는 일입니다. 이는 종로구 키자니아 은행가 체험코스의 유사 리딩방 운영 등에 비하면 발효에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고, 정권에 당장의 빛을 주지 않을 수 있으며, 많은 이들의 양보와 협력이 필요한, 아주 불편한 일입니다. 그러나 정말 한국 증시의 ‘밸류업’을 원한다면 이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멍청아, 문제는 신뢰야!’ 한국의 시장은 그 윤리성에 대한 신뢰를 잃었습니다. 2021년 류영준 前 카카오페이 대표가 얼굴 마담을 맡고 있는 이른바 ‘먹튀8적’은 그 당시 아무런 피해 없이 깔끔하게 하이스트를 성공했고, 그 일원이었던 신원근은 지금 카카오페이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아마 당시의 하이스트 무비에서 브래드 피트/조지 클루니/맷 데이먼의 역할이 아니었던 덕을 본 듯합니다. 이쯤 되면 Ocean’s Eleven보다 Ryu’s Eight가 솜씨가 좋네요. 그리고 진짜로 위법성이 있는 행위를 저지른 주가조작범 원영식 초록뱀그룹 회장은 얼마 전 보석으로 나왔습니다.

당장 제 기억에 떠오르는 두 사례만 놓고 봐도 한국 시장에 정이 떨어지지만, 당연히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누구도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일반 투자자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시장의 자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정부가 시장의 영악함을 이길 수 있다고 믿지 말고, 부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여 시장 정의를 구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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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에게 펜타닐 패치 붙인다고 암세포가 죽지 않습니다. 물론 잠시동안 약간 뿅 갈 수는 있겠습니다. 느리게라도 정도를 걷는 시장 개혁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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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_Does who cares win?

지금 ESG는 정력제 광고 속 자신감을 상실한 중년 남성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과연 ESG는 자신의 비아그라를 찾아 잃어버린 전성기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애초부터 그것은 본질적으로 incompetent했던, 그저 대중의 도덕적 허영감을 충족하기 위해 발명된 도구적 단어였을까요?

ESG는 한때 잘 팔렸습니다. 과거 어느 순간 ESG는 자본주의의 희망 또는 그의 양심이라는 칭송을 받았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투자를 상징하는 하나의 거대한 상징으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서점에는 ESG 관련 서적이 쏟아졌으며, CEO들은 컨퍼런스 콜이 잡힐 때마다 투자자의 도덕적 고양감을 채워줄 멋들어진 말 몇 줄은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ESG는 권력을 잃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는 CEO들의 2023년 2분기 기준 ESG에 대한 언급 빈도가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ESG 펀드의 경기도 끔찍합니다. Morningstar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기후 중심 뮤추얼 펀드의 판매가 75% 하락했습니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ESG펀드에서 2023년 4분기에만 5.1억 달러의 자금을 출금했습니다. 유럽에서의 3.3억 달러 유입이 있긴 했지만, 일본에서도 1.2억 달러를 빼 간 관계로 전체적인 자금 유출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ESG의 이러한 전방위적 침체에는 크게 네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미국 정재계의 태도변화입니다. 이는 아마 후술할 다른 어떤 이유보다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요인일 확률이 높습니다.

미 정재계의 태도 변화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역시 ESG 투자의 창세기를 연 블랙록이 Climate Action 100+에서 탈퇴한 일입니다.

Climate Action 100+은 항공사와 정유사 등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회사들에 대해 탄소배출을 통제할 것을 요구하는 주주 행동 방침을 약속하는 단체, 혹은 행동 결의입니다.

지난 2020년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로 손꼽히는 블랙록과 JPMAM(JP Morgan Asset Management), Sane Street은 해당 결의에 가입했습니다. 당연히 모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그 중심에는 당연히 진짜 ‘세계 최대’의 운용사인 블랙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인 회사와 래리 핑크 회장의 여러 행보는 ESG를 단번에 시대의 핵심 화두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2024년 2월 블랙록은 해당 행동 결의에서 탈퇴했습니다. 그러자 JPMAM과 Sane Street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세 운용사의 이탈은 해당 행동 결의의 수명이 사실상 다했음을 상징합니다.

이상기류는 지난해부터 있었습니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지난해 6월 ESG에 대해 “무기화되었다(Weaponized)”고 지적했습니다. 평소 언론에서 ESG가 어떤 식으로 다루어지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분명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번 결단의 진짜 동기라고 보는 것은 다소 순진합니다.

핵심은 정재계의 반발입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텍사스를 필두로 한 이른바 ‘Red State’를 중심으로 反ESG의 거센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미 미국 내 열 여덟 개의 주는 이미 이른바 anti-ESG legislation을 채택했고, 그 중에는 화석연료 및 총기 취급 기업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거나 state pension fund가 환경적/사회적 요소를 고려하는 것을 하지 않도록 명령하는 강경한 ‘反ESG’ 법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더하여 자본시장 환경이 악화되면서 투자자들의 수익 우선시 요구까지 거세지자 운용사 입장에서는 굳이 ESG Action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고, 실제로 떠났습니다.

물론 세 거대 운용사가 기후환경 운동 결의에서 탈퇴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미국 자본시장 전체가 反ESG 진영으로 전향했다고 보는 것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본인들의 ESG 행보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을 철회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이 ESG가 점차 자본시장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음을 함의합니다.

ESG 침체의 두 번째 요인은 ESG 투자의 성과 부진입니다.

최근 ESG 투자의 성과는 처참합니다. 지난 2023년 ESG 투자의 성과는 2022년 다음으로 좋지 않았습니다. 146개의 Sustainability index 중 82개가 non-ESG 비교군보다 열등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중 일부의 결과는 극도로 우울합니다. ESG 투자에 테마로 자주 활용되는 S&P Global Clean Energy Index는 지난 한 해 30% 하락했고, S&P/T&X Renewable Energy & Clean Technology Index도 37% 하락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ESG 펀드의 퍼포먼스도 대체로 별 맛이 없었습니다.

작년에 미국 주식 투자를 해보신 분들은 이러한 침체에 100% 공감하시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에는 재미없는 시장 속에서도 Magnificent한 대형 주식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ESG 인덱스와 ESG 펀드가 대체로 그러한 기업들을 ESG를 이유로 장바구니에 편입하지 않았습니다.

ESG 침체의 세 번째 요인은, 그 정체성의 모호함입니다.

ESG가 도대체 뭘까요? E와 S, G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초등학생도 압니다. 그런데 누구도 ESG를 명쾌하게 이해하고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의 신랄한 비판이 가장 좋은 설명을 제공합니다. “ESG는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여러 목표를 한 데 묶어 놓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한 가이드라인이다.”

ESG는 어감도 좋고 인상에도 잘 남지만, 그를 구성하는 E와 S, G 모두 전혀 명쾌한 키워드가 아닙니다. 99%가 동의할 수 있는 E/S/G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ESG는 종합 평가입니다. 예컨대 E는 AAA+, S는 B-, G는 F 등급인 회사는 ESG 관점에서는 어떤 등급을 부여해야 할까요? 만약 특정 ESG평가사가 해당 회사를 종합 A라고 판단했다고 하면, 대다수가 그에 동의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유럽 증권시장부의 연구가 밝힌 ESG 평가의 평가사 간 상호연관성은 고작 60% 수준입니다. 반면 신용 평가의 경우 그 수치가 99%에 육박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의 ESG 등급을 신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ESG 등급은 많은 인덱스 및 펀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유의미한 잠재적 위험을 생성합니다.

투자에 있어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ESG 투자는 최근 그 정체성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ESG 펀드, ESG 투자라고 하는데, 정작 누구도 그 정체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뉴욕 시 Pension fund의 Brad Lander의 “(ESG 펀드는) 투명함과 전략적 방침을 잃었다”는 비판이 그 문제를 잘 요약합니다.

일례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ESG ETF의 주가 추이는 모두 사실상 S&P 500 ETF와 거의 동일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또한 블랙록 등 대부분의 운용사들은 전체 ESG 펀드의 상당 부분을 패시브하게 운영하는데, 해당 펀드들은 대개 SPY 등의 일반 지수 ETF를 유의미하게 보유합니다. 패시브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펀드의 투자 전략이 희미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럴거면 그냥 SPY를 사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전한데다 운용 보수도 싸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ESG의 마지막 문제점은, 사실 투자 관점에서 ESG를 고려하는 것이 통계적으로는 아직까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초 ESG가 각광받은 이유는 단순히 어떠한 가치에 대한 존중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ESG 관점에서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뛰어난 중장기적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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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이 몇 년 지난 지금 그 기대는 일단 지금 기준으로는 상당 부분 무너졌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대충 좋아 보여도 다 오르던 COVID-19 시기 이후에도 잘 살아남은 기업은, Magnificent할수록 더더욱, 오히려 ESG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한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ESG주의자들이 예찬하던 기업들은 상술했듯 대개 그 퍼포먼스가 좋지 못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난 1년의 특이점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Rómulo Alves 연구진은 최근 포괄적 연구를 통해 지역/시대/ESG 요소의 차이에 관계없이 ESG 점수와 주가 상승 사이에는 어떠한 관련성도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ESG 중에 가장 의미 없었던 것은 G(지배구조)였습니다.

사실 G의 아이러니는 생각보다 지독합니다. 음의 상관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2년 발간된 논문에 따르면 2008년 이후를 기준으로 거버넌스가 좋지 못한 기업의 주식이 오히려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즉 누군가 투자에 있어 G를 고려했다면 통계적으로 그는 부자가 되었을 확률보다 테슬라나 메타로 부자가 된 친구를 질투하는 실패한 도덕적 투자자가 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저는 수익을 위하여 ESG를 지향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실상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장에 나도는 E와 S는 너무 복잡/모호하고, 그나마 명쾌한 것은 G인데 외부인을 이사로 앉힌다고 회사의 리스크가 감소하지는 않습니다. 당장 엔론의 이사진 14 명 중 11명은 외부 인사였습니다. 사실 애초에 FSU의 James Coombs가 증명했듯 CEO의 권력이 대부분 이사진의 독립성보다 유의미합니다.

ESG는 지금까지 여러 영역에 걸쳐 오·남용된 감이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모로 지금 ESG라는 도구를 갖고 놀고 있는 이들, 예컨대 상업언론이나, ESG 관련 회사, 정치인 등의 무리를 신뢰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지금 분명히 자기도 모르는 내용을 가지고 돈 장사, 표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ESG 행동이 세상을 나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본질적으로는 1953년에 나온 CSR에서 거의 진보된 것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ESG가 만들어낸 변화의 물결은 현재 및 미래 세대에 나름대로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보면 ESG는 현재 시장의 성숙 단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이미 발생한 거대한 흐름은 절대 쉬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지금의 여러 혼란이 지나가면 지금의 파도는 인류를 아마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습니다. 다만 그를 위해서는 냉소와 희망의 시선을 모두 가진 합리적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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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공 포르노 산업_가짜 예수 비즈니스

지금 한국 서점과 유튜브에는 가짜 예수가 4열 종대로 앉아번호로 연병장 열 바퀴입니다. 그들은 각각 적게는 수만 명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의 추종자를 몰고 다닙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대개 제 욕망을 못이기고 알아서 자폭하지만 그 공백은 곧 다른 가짜 예수로 채워집니다. 정말, 세상은 어쩌다 요지경이 되었을까요?

바야흐로 성공 포르노의 전성시대입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슬슬 폭발의 조짐을 보이던 성공 포르노는 코로나 이후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성공 포르노란 간단히 말해 “이것이 성공의 비밀이다”는 식의 자극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을 유인해 그들에게 돈을 긁어내는 사업입니다.

초기 성공 포르노는 미신적/주술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더 시크릿>입니다.

<더 시크릿>의 내용을 보면 이게 자기계발서인지 사이비 교주가 출간한 유사과학 서적인지 구분이 안되는 수준입니다. 책의 시그니처인 그 유명한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이 그 방점을 찍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우주에는 고도로 발달한 인류의 기술로도 관측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생각에 따라 어떠한 에너지를 끌어당긴다는 이론입니다. 해괴합니다. 그러나 해당 이론은 오랫동안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책의 전성기에는 소위 식자라는 사람들마저도 해당 이론을 언급하는 일이 꽤 잦았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초기 성공 포르노의 내용이란 게 주장만 쏙 빼놓고 보면 보통 그럴싸하고 듣기 좋지만 별 매가리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공허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주장에 굳이 애써 딴지를 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주장만 쏙 빼놓고 보면 그냥 그렇게 살라고 해도 크게 유해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공 포르노의 주장은 모두 그 근거를 따지고 들면 죄다 “어느 날 개가 알을 낳았는데 거기서 고래가 나왔어요” 수준의 들을 가치가 하등 없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 주장만 놓고 보면 의미는 없지만 크게 유해하지 않은, 그야말로 하찮은 것들이었기에 ‘끌어당김의 법칙’의 설파는 반대파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 사회적 우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1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성공 포르노는 <시크릿> 시대의 것에서 한층 더 진화했습니다. <1>포장은 더 그럴싸해졌고, <2>가스라이팅 방식은 더욱 체계적으로 구축되었습니다.

한국 성공 포르노의 포장 측면에서의 진화는 [1]가짜 전문지식의 활용 방식과 [2]창작 에피소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1]가짜 전문지식의 경우, 원래부터 성공 포르노의 클래식한 대중 기만 전술입니다. 방법론을 간단히 요약하면, 어차피 전문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무니 그냥 대충 유명 학자, 유명 서적의 내용 중에 괜찮아 보이는 문장 몇개를 어디서 긁어온 다음 구체적 맥락 없이 그 문장만 책의 목적에 따라 활용하는 것입니다.

또는 애초에 학자가 성공/행복 등을 위한 포르노 성격이 강한 목적으로 저술한 책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 경우 서로의 목적이 합치하므로 더더욱 인용이 편리합니다.

전문지식의 활용 면에서 성공 포르노 산업이 진화한 부분은, 물리학 등 본인 주장과 상당히 동떨어진 분야에서 그 근거를 무리하게 빌려온 구세대 성공 포르노와 달리 ‘가짜 전문지식’을 만들 때 심리학, 뇌과학, 철학, 경영학, 경제학 등 뭔가 성공과 진짜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학문을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성공 포르노는 여전히 이전과 동일하게 너무나 공허하고, 때로는 다분히 악의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활자들의 묘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최근 채택한 ‘있어 보이는’ 학문들, 특히 심리학과 뇌과학이 제공하는 그럴듯함은 성공 포르노 업자들에게 이전 세대 이상의 권위를 안겨주었습니다.

다음으로 [2]창작 에피소드는, 자신의 목적에 합치하는 일화를 지어내서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 양 활용하는 일입니다.

저는 창작 에피소드 전략의 도입이 성공 포르노 업계 역사상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창작 에피소드는 그들에게 컨텐츠 생산 효율성의 획기적 개선과 대중의 전례 없는 신뢰를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처음 이게 먹힌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느꼈을 짜릿한 우월감에 대해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아는 모 선배는 전국 Top 2로 꼽히는 과학고등학교에 최우등에 준하는 성적으로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배에게는 과학고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았고, 2학년 시기에 학교를 자퇴한 뒤 3년 동안 롤만 하며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완전히 망가진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것은 집안 어느 날 집안 책장에서 우연히 스키너의 책을 발견한 일이었습니다. 그날 선배는 책에 언급된 도구적 조건형성 이론에 감명을 받고 지금껏 자신이 ‘부적 처벌’로 인생을 망쳐왔다는 사실을 반성하고 이제부터 ‘정적 강화’ 방식을 삶의 방침으로 삼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후 그 선배는 1년 만에 서울대학교 공대에 진학했고, 재학 중 창업에 성공하여 수백억 대 매출을 일군 뒤 엑싯까지 성공해 지금은 수백억 대의 자산을 일구었습니다.

그 선배를 엑싯 직후 만났을 때 제게 해준 말은 지금도 제 행동 원칙으로 남아있습니다. “xx아. 너를 관리할 때든 직원을 다룰 때든 이건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성장은 처벌이 아니라 포상으로 이루는거다.” 그 이후 3년 동안 제 연봉은 20배 뛰어 작년에는 10억을 넘겼습니다.

상기한 모든 내용은 제가 방금 즉석으로 지어낸 내용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어떠한 출처도, 증빙 자료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내용을 <부의 갓길을 달리는 슈퍼 대각선주행자>라는 이름의 자기개발서에 삽입했다면 대부분은 제대로 의심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누가 증빙을 요구하면 프라이버시 이슈로 어렵다는 답변만 남기면 됩니다. 어느 정도 인지도만 확보했다면 대중을 기만하기란 이토록 쉬운 일입니다.

다음으로 <2>가스라이팅은 최근의 성공 포르노 산업이 특히 유독한 이유입니다.

비교적 상냥했던 과거의 <더 시크릿>과 달리 지금 한국의 성공 포르노는 말 그대로 꾸짖는 사업, 가스라이팅 사업입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계몽’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표현 방식이야 다들 다르겠지만, 주장의 요지는 모두가 동일합니다. 요약하면, “이 무지몽매한 것들아. 성공의 비밀을 모르는 너네가 참 답답하다. 애들이 이걸 몰라요. ‘법칙’이라는 것이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는데, 너희들이 이렇게 패배자처럼 빌빌거리고 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정말 너네는 이래서 안된다”가 그들이 전달하는 내용의 정수입니다. 그리고 이 기나긴 훈장님 말씀의 끝, 그 결론은 늘 “그러니 내가 추천해주는 책 읽고 내 책 사고 내 강의 사고 내 컨설팅 받아라”는 금과옥조 같은 내용으로 귀결됩니다.

‘더 있어 보이게, 더 가학적이게’ 이것이 지금의 성공 포르노 업자들이 대중을 현혹, 세뇌하고 가학하여 돈을 갈취하는 진화한 방식입니다. 이는 명백하게 비도덕적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비판의 목소리에 관계없이 승승장구를 이어갑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걸까요? 그 정답은 누구에게도 없겠지만,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지금 시대는 가짜 예수가 판치기 최적의 환경입니다.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비밀에 대한 미신적 믿음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현실에 만족하는 인물은 드뭅니다. 지금 같은 불경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점점 소속한 계층을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삶에 불만족하는 이들은 마스터, 메시아를 원하게 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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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에게 가짜 예수의 말이 노출된다면 어떨까요? 예컨대 곱게는 “고전 100권 읽으면 인생 무조건 바뀐다” “심리학을 알면 연봉 10억 찍는다”부터 독하게는 “내 컨설팅 안받고 사업을 하는 애는 문제 있다” “제 성공의 정수가 담긴 이 책 하나면 당신은 새롭게 다시 태어납니다”, 살짝 장르를 비틀면 “xxx코인 투자하면 인생 바뀐다” “xxx 섹터 3년 내에 100배 간다”… 모두 사기꾼 가짜 예수들의 말이지만, 삶의 피로에 이성이 지친 상태에는 누구나 현혹될 수 있습니다.

둘째, 시장을 정화하는 역할을 해야 할 지식인 집단이 그 기능을 거세한 채 성공 포르노 산업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요즘 책 팔고 싶은 교수들은 출간 일정 확정되면 곧바로 성공 포르노 유튜브로 달려갑니다. 사실 애초에 책을 쓸 때부터 책 전체의 품격보다는 좋게 말하면 대중 친화적 메시지 전달, 솔직히 말해 다분히 포르노적인 성격 강화에 집중하기에 곧장 그쪽으로 홍보하러 꼬리 흔들며 뛰어가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대단히 합리적입니다. 가뜩이나 한국은 교수들 월급도 높지 않은 실정이니, 연구자가 대중서를 일년에 한두 권씩 다작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행보가 성공 포르노 업자들의 권위를 향상해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교수님들에 대해 약간 독설하긴 했지만, 대표적인 예시로 들었을 뿐 해당 문제는 전체 지식인 사회에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전문적인 영역에 대해서도 그러한 지의 여부는 제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한국 지식인 사회의 비판 기능은 적어도 대중서, 특히 자기개발서에 대해서는 완전히 마비되어 있습니다. 장르가 달라서 그렇다기엔 성공팔이들의 전문지식 오용이 활성화된 역사가 이제 꽤 깁니다. 물론 다들 본인 책 쓰시느라 너무 바쁘셔서 그러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 정말로 세상 어딘가 절대적인 성공의 원리가 있다면, 저도 간절히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마 그런 것은 없을 겁니다. 만약 양아치 성공팔이가 아니라, 진짜 엄청나게 성공한 인물인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혹은 성 프란체스코나 달라이 라마 같은 종교적 지도자가 어떤 답을 말한다면 그것은 답이 될 수 있을까요? 도움이야 훨씬 되겠지만 절대적인 답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나 반(反)직관적이고 다면적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삶의 그러한 면면에 대처하려 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에 그 고귀함이 뿌리내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있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들을 우롱하는 성공 포르노를 혐오합니다. 힘든 시대가 만든 괴물인만큼 단기간에 퇴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언젠가 사필귀정의 원리가 그들을 단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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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증시의 미친 랠리_연료와 점화

일본 증시가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 주식 시장은 명백하게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폭발적인데요. 무엇이 그 폭발의 연료가 되었고, 무엇이 그에 불을 붙였을까요?

지금 일본 증시는 미쳤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주가 지수인 Nikkei 225는 2024년 YTD로 19.3%, 1Y 기준 42.9%가 올랐고, TOPIX도 YTD 14.5%, 1Y 34.2%가 올랐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절대적으로 보아도 놀랍지만, 같은 기간 미국의 S&P 500(YTD 7.7%, 1Y 27.0%), 유럽의 STOXX(YTD 3.9%, 1Y 7.2%)가 보인 성과를 생각하면 경이로운 수준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많은 이들에게 어떤 강렬한 기시감을 전달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아주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일본에겐 사실 이보다 훨씬, 비교도 안 되게 화끈한 한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80년대, 소위 ‘버블 시대’입니다.

그야말로 기록적인 불패 신화가 이어지던 시절,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한 전술로 자산 시장에 성냥불을 붙이자 극단적인 FOMO의 질주가 시작되었습니다. 한때 일본 증시의 시가총액 합이 전체 세계 주식 시장의 가치 중 37%를 차지했고, 버블의 절정에 가까웠던 1988년에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에 무려 33개의 일본 기업이 속했습니다. 그 와중에 일본의 NTT가 전세계 시가총액 1위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화려한 케이크 위 인형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광란들이 역사적으로 으레 그러했듯, 그 끝은 좋지 못한 것을 넘어 처참했습니다. 거품의 절정이었던 1989년, 그 마지막 거래일에 그 정점을 찍었던 일본의 주식은 그 후 80%가 넘는 극적인 추락과 함께 긴 침체를 겪어야 했습니다.

최근 일본 증시의 열풍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모두가 그 정오를 기억하는 나라가 기나긴 밤을 보낸 뒤 드디어 새로운 여명의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감동적인 일이죠. 그런데 무엇이 그 여명의 모멘텀을 생성했을까요? 저는 [A]한 가지의 단기적 시장 요인과 [B]네 가지 기업 내부적 요인, [C]세 가지의 시장 외 요인을 꼽고 싶습니다.

우선 단기적인 요인부터 짚고 넘어가면, [A-1]엔비디아 주식의 폭등이 압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 꼽힙니다.
지금 엔비디아는 세계 증시의 기둥이고, 그 CEO 젠슨 황은 시장의 메시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죠. 단순 우스갯소리는 아닌 것이, 실제로 그렇습니다.

현재 엔비디아는 시총 1.94조 ‘달러’ 규모의 고질라 기업입니다. 그리고 그 괴수 기업은 AI를 중심으로 한 시대 변화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뒤 YTD 66.2%, 1Y 244.4%, 3개월 기준 75.9%(!)의 가히 괴이한 주가 상승을 보이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이러한 역사적 랠리는 수많은 수혜주를 생산했습니다. 그 순풍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 것은 단연 엔비디아의 뿌리이자 내러티브인 ‘AI 중심 미래’와의 연관성이 높은 기업들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본 증시의 최고 행운이자 최고 호재는, 그 직접적 주가 수혜의 주인공이 일본 증시에 다수 상장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는 Tokyo Electron, Advanest Corp, Softbank를 꼽을 수 있는데, 언급한 기업 모두 YTD 기준 40%를 웃도는 주가 상승을 거두며 최근 일본 증시 랠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일본 엔비디아 관련주의 랠리를 단순히 젠슨 황의 은총으로 보는 것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일본 반도체 주식의 성과의 배경에는 반도체에 국가 명운을 베팅한 정부 차원의 정책과 기업의 우수한 역량이 있습니다. 비슷한 논리로 이번 일본 증시의 랠리를 단순히 엔비디아 랠리, 반도체 랠리로만 해석하는 것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이번 일본 증시의 열풍은 그 [B]뿌리가 꽤나 탄탄합니다.

먼저 일본 증시는 [B-1] 실적 면에서 대단히 우수합니다. EPS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일본 TOPIX의 EPS는 2021년을 기점으로 S&P500과 STOXX600을 앞서기 시작하다 2023년부터는 그 차이를 더 크게 벌렸습니다.

일본 기업의 역량이야 예전부터 꾸준히 칭찬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거기에 더해 시대 변화에 기민하게 적응하는 능력까지 갖추기 시작했다는 평가입니다. 하이브리드 차종을 기반으로 예년 대비 2배 가까이 되는 매출을 거둔 도요타가 그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주가는 이익의 함수”라는 피터 린치의 유명한 격언이 있듯, 일본 기업이 보이는 높은 EPS는 이번 랠리를 단순히 단기적인 거품으로 보기 어렵게 하는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일본 증시에게 높은 EPS만큼 강력한 무기는 [B-2]상대적으로 착한 밸류에이션입니다.
근래 일본 Nikkei는 상술했듯 대단한 상승 기류 위에 올라있지만, 현재 그에 속한 기업 중 37%는 여전히 그 장부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느끼기에도 상당히 높은 비중이지만, 미국의 S&P 500과 유럽의 STOXX 600의 경우 그 비중이 각 3%, 20%에 그친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Nikkei의 많은 기업은 그 EPS와 뛰어난 재정건전성에 비해 다소 당황스러울 정도로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P/E로 관점을 전환해도 그 결과는 여전합니다. 3월 1일 기준 Nikkei 225의 P/E는 대략 18 정도인데, S&P 500이 32 수준인 것을 생각하면 P/E 관점에서도 일본 증시는 그 경쟁력이 상당합니다. 여담으로, 버블의 정점이었던 1989년 Nikkei의 P/E는 62였습니다.

또한 [B-3] 재정건전성 관점에서도 일본의 기업은 대체로 우수한 점수를 받습니다. 이는 일본이 아주 오랫동안 극단적인 저금리 정책을 실행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뭇 놀라운 부분입니다.

기업 내부적 요인에서 마지막으로 꼽고 싶은 부분은 [B-4]상당히 개선된 주주 친화성입니다.

객관적으로, 일본은 투자하기 ‘편한’ 나라가 아닙니다. 언어의 장벽도 심각하며, 100주 주문으로 대표되는 후진적인 주식 시장 정책도 감점 요인이고, Cross-shareholding으로 점철된 일본 특유의 거미줄식 지배구조는 외부 투자자 입장에서 재앙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일본 증시는 지극히 돈의 관점에서 보면 주주 친화적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과 배당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4배 늘어 2023년 기준 그 규모는 6,000억 달러에 달합니다. 배당수익성의 경우에도 미국의 수준을 상회하는 2%의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일본 주식 시장 내 자본의 과반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단히 환영할 변화라는 점에서, 일본 기업은 분명 더 매력적으로 변모했습니다.

다음으로 일본 증시 견인 요소 중 마지막 카테고리인 [C]시장 외부적 요인 중 단연 가장 중요한 요인은 [C-1] 안정적인 저금리입니다.

저금리는 소위 ‘아베노믹스’의 상징이자, 황금기 이후 일본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통화정책입니다. 아베는 낮은 금리를 통해 장기적인 국가적 불황과 디플레이션에서 일본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일단 대차대조표부터 키우고 보자는 거였죠.

아베 내각의 목표는 2% 인플레였습니다. 다만 그 성과는 그의 재임 기간만 놓고 보면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정말 지독한 뚝심과 함께 말 그대로 ‘무조건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왈가왈부가 많았고, 그 정점이 되었던 것은 COVID-19 이후 회복 과정에서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는 분위기에도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을 시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 일본 증시의 훈풍은 이 ‘디커플링’에 막대한 수혜를 입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많은 외국인 자본이 전세계 선진국 중 유일한 ‘cheap money’의 나라에 몰렸으니까 말입니다.

낮은 금리를 근거로 시장에 진입할 때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리스크는 금리 정책의 기습적 변화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일본은 조금 자유롭습니다. GDP 대비 부채비율이 263%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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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부채비율은 일본에게 기습적 금리 인상이라는 카드가 몰락의 도미노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정책 당국은 그 부분에 대해 극단적으로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일본의 저금리 환경이 더더욱 매력적인 요인입니다.

다음으로 꼽을 만한 요인은 [C-2]중국 시장의 매력 저하입니다.

최근 중국 시장의 매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원래부터 중국 시장은 불투명성 등의 리스크를 안고도 성장에 베팅하는 시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 미국의 직접적인 갈등, 중국 당국의 여러 反시장적인 정책, 헝다를 필두로 한 자산시장의 위기 등이 겹치자 많은 외국인 투자자가 중국에서 이탈했습니다. 그 결과로 Hang Seng Index는 지난 1년 동안 19.3%나 하락했습니다.

중국에서 떠나간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 대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일본은 상술한 다양한 요인으로 아주 큰 메리트가 있는 투자처였습니다. 자연스레 많은 돈이 몰렸고, 증시의 활황에 기름을 부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시장 외부 요인은 [C-3]주식 투자 문화의 부흥입니다.

일본은 상술한 100주 주문 등의 문화적 지체로 인해 주식 투자의 장벽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버블 붕괴의 경험 탓에 돈이 있는 개인도 현금을 주식으로 운용하기보다는 현금 그 자체로 쌓아놓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비과세 주식계좌 ‘NISA’ 개혁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노력과 주식 시장에 대한 기업들의 높아진 관심 덕택에 현재 일본 주식의 접근성은 과거 대비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는 평가입니다.

거기에 주가 랠리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최근 일본의 주식 투자 문화는 코로나 시기 한국의 개미 열풍처럼 상당히 달아오른 상태입니다. 이는 시장에 기존에 60% 수준의 점유율을 가졌던 외국 자본에 더해 국내 자본이 적극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함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지금의 활황에 상당 부분 기여했습니다.

이번에 일본 증시의 랠리에 대한 글을 쓰면서, 지난 2022년 10월 일본이 사모펀드에게 황금기에 들어서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쓴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글을 위해 Bain Capital이나 BPEA 임직원의 인터뷰를 다수 참고했는데, 당시의 시기가 일본 투자가 환 차익 관점에서 주목이 쏠리던 시점이었음에도 그들 모두가 환율보다 일본의 경제적/정책적 기반, 기업의 역량에서 나오는 장기적 성장 가능성에 우선적으로 주목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인터뷰에서 100% 솔직했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당시 엔화가 제공했던 메리트는 최고의 투자 근거가 되기에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 그들의 선택이 꽤나 옳았음을 확인하니 으레 말하는 ‘고수’의 시선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향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영역이 어디이든, 무엇이 도화선에 불을 붙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폭발의 연료가 되는 것은 긴 시간동안 쌓아온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인 것 같다는 얕은 단상으로 이만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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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C PE 시장_ 2024년 지금 봄은 누구에게 오고 있는가?

금일부로 2024년의 첫 분기가 지나갔습니다. 어느새 일년의 삼분의 일이 끝난 건데요. 연초부터 자금 확충을 위해 열심히 펀드레이징 캠페인을 돌았던 APAC 지역 사모펀드 시장에는 일본을 제외하면 아직 봄이 제대로 제 얼굴을 비추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역은 언제쯤 봄날의 화사한 햇살과 인사할 수 있을까요?

전반적으로 글로벌 PE 시장의 경기는 모두 울적합니다. 베인의 최신 리포트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지난 일년 간 전세계 PE 산업은 딜 밸류 면에서 37%, 엑싯 밸류 면에서 44%, Closed fund의 숫자 면에서 38%의 하락을 겪었습니다. 엑싯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회사의 밸류도 3.2조 달러로, 역대 최고를 돌파했습니다.

그러나 경기를 펀드레이징에 국한해서 따진다면, 물론 역시 전반적으로 불황입니다. 다만 침체가 상대적으로 보면 아주 극심하지는 않았습니다. 2023년 기준 전체 Private Capital의 펀드레이징은 출처에 따라 17-20% 정도의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개중에는 인프라(-56%), 벤처캐피탈(-56%), 부동산(-31%), Growth capital(-30%) 등 막대한 타격을 입은 섹터도 있지만, 현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는 Distressed PE(-14%)의 경우 꽤 선방했고, Buyout(+18%) 역시 의외의 반등을 보였으며, 현 상황에 딱 맞는 상품 중 하나인 Secondaries의 경우에는 무려 92%의 압도적 성장을 보였습니다.

사실 APAC지역은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선방한 케이스입니다. 전체 글로벌 펀드레이징이 17-20% 하락한 반면 APAC지역의 펀드레이징 규모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9%의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물론 APAC지역의 경기 역시 엄밀히 따지면 분명히 불황입니다. 펀드레이징 규모/투자 집행/엑싯/closed fund 모두 5년 최저치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APAC지역은 하나로 묶어 전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KKR의 Head of Asia Credit인 Brian Dillard가 KKR Insights에서 밝힌 말을 빌리자면, “APAC지역은 워낙 국가 별 개성이 강해서 “One Asia”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러한 양상은 펀드레이징 경기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중국 시장의 펀드레이징이 미중 갈등으로 인해 극대화된 불확실성 리스크로 인해 37%의 큰 하락을 보인 반면, 일본의 경우 증시 랠리 및 여러 훈풍에 힘입어 펀드레이징이 전년 대비 무려 80%나 증가한 대단한 호황을 거뒀습니다.

일본 지역 펀드가 이러한 호황을 누린 요인은 앞서 몇몇 글로 말씀드렸던 (1)엔저를 통한 환차익 + (2)상속대체(Succession alternatives) 수요 + (3)각 기업의 탄탄한 펀더멘탈 + (4)국가 차원의 자본시장 지원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굳이 하나 더하자면, 전기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도요타나 AI 시대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 여러 반도체 기업을 통해 일본이라는 시장이 (5)중국 시장에 대한 Appetite 쇠락을 대체하는 새로운 Growth market으로 주목받은 것이 더해질 수 있겠습니다. 하나만 있어도 좋은 훈풍이 다섯 개나 부는 덕택에 KKR/Bain Capital 등의 메가 펀드가 일본에 떼거지에 몰려들었고, 이는 당연히 시장 전반의 활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일본 시장에도 자본시장이 싫어할 요소는 꽤 많이 있습니다. 우선 일본 시장은 (1)특유의 언어적/문화적 폐쇄성으로 인해 일본 전문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소위 말하는 거미줄/문어발 식으로 엉망진창이 된 거버넌스가 흔하며 (3)지금 일본이 혜택을 입고 있는 환이나 정책 등의 요소가 언제 방향을 바꿀지 모른다는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관점에서 보면 APAC 지역 전체가 해당 리스크를 공유하기에, 그러한 위험의 존재에도 일본이 현 시점 APAC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시장의 펀드레이징 경기가 생각보다 덜 침체한 것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입니다. 한국 펀드레이징 시장이 지난 한 해 기록한 18%의 감소는, 일본을 제외한 다른 APAC지역 경기보다 훨씬 양호한 수준입니다.

일본을 제외한 모든 APAC지역의 펀드 레이징 난이도가 크게 올라간 상황에서 펀드레이징을 잘 하려면 일단 엑싯을 해서 어떻게든 귀한 LP 님들에게 돈을 좀 돌려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다들 마음 같아서는 적절한 가격에 타협해서 일단 좀 엑싯을 하고 싶은 상황입니다. 실제로 지난 2023년 APAC지역 PE는 포트폴리오 기업 중 52%의 엑싯을 시도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생각보다 밸류에이션 멀티플이 하락했습니다.

2018년부터 2022년을 아우르는 5년 동안 APAC지역 PE-backed transaction의 median EV/EBITDA의 최저/최고/평균 값은 각 10.2x/14.8x/12.9x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같은 통계의 2023년 값은 10.1x에 불과합니다. 이는 5년 평균 대비 21%, 전년 대비 32%가량 하락한 수준입니다.

자본시장 불경기에 사모펀드의 파트너가 하는 인터뷰를 보면 자주 나오는 얘기가 있습니다. ‘멀티플이 낮아진 빈티지의 IRR이 더 좋다. 따라서 오히려 투자하기 좋은 해로 보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단순히 산수를 해봐도, 전체적으로 매수 멀티플이 떨어진 시점에서 매수를 할 수 있다면 이는 당연히 IRR 관점에서는 매수하기에 평소보다 유리한 시점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LP에게 새로 돈을 요청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갖고 있는 포트폴리오의 가치도 굳건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LP들에게 지난 시기의 성과를 DPI(Distribution to Paid-in Capital), 다시 말해 실제 돈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황기에 멀티플이 낮아지면 엑싯 관점에서는 세컨더리부터 IPO까지 다 쓴맛이라 영 좋지가 못합니다. 실제로 2023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PE의 딜 무산 이유 중 40% 이상이 Valuation mismatch였습니다. 따라서 여러모로 불황기 펀드레이징은 난이도가 높습니다. 돈을 회수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엑싯이 밀리는 것이 PE 입장에서 특히 곤혹스러운 이유는, 지난 시기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면서 일정 기간 이후부터는 보유 기간과 IRR이 반비례하는 경향성이 세계 자본시장 전반에 꽤 분명하게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PE 바이아웃 시장의 3년 미만/3-5년/5-7년/6년 이상 보유시 median IRR은 각 17%/27%/18%/14%로, 보유 기간 5년이 지났을 때 IRR이 약화하는 추세를 꽤 분명하게 나타냅니다. APAC지역의 수치 역시 각 18%/18%/15%/10% 수준으로, 글로벌 시장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적어도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는, 지난 2020년-2021년 인수시장 호황 시기의 매물의 신선유통기한이 지금부터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 남았음을 의미하고, 동시에 멀티플이 좋지 못한 지금이 하필 얄궂게도 통계적으로 보면 팔기 딱 좋은 시점임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엑싯이 지체되고 금리가 올라가는 작금의 환경은 바이아웃 등의 非크레딧 PE 투자가 대체 투자 시장에서 갖는 지위를 떨어뜨렸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denominator effect의 부재입니다. 지난 증시 침체기에 많은 언론이 증시가 하락하면서 LP 포트폴리오에서 대체투자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 PE가 결과적으로 overallocated되었다는 부분을 거론하며 향후 증시가 회복되면 펀드레이징의 불황도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S&P가 5,200을 뚫은 지금 시점에도 그 은혜로운 후광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PE시장에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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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나은 것은 대형 PE입니다. LP의 Risk Appetite가 떨어진 만큼 두터운 트랙 레코드를 보유한 대형 PE에 대한 LP들의 선호가 증가해 전체 시장 쇠퇴의 영향을 어느 정도 상쇄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체 APAC 시장에서 투자를 집행한 펀드의 숫자는 25% 감소했지만, 전체 딜 밸류에서 상위 20개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31%에서 47%로 크게 늘었습니다.
그러나 대형 PE도 말 그대로 ‘그나마’ 나을 뿐 그들도 펀드레이징에서 적잖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실제로 3월 25일 인베스트조선의 기사에 따르면 APAC지역에서 칼라일/TPG/어피니티/앵커 등의 대형 글로벌 PE도 펀딩에 고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대형PE에게 유리한 환경입니다. 쌓아놓은 드라이파우더로 세컨더리로 나온 눈물의 땡처리를 장바구니에 담을 수도 있고, 기존에 크레딧/인프라/Special Situation 투자 팀을 구축해놓은 상태라면 펀드 전체 차원에서는 포트폴리오 효과로 큰 타격을 면했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중소PE에게는 다소 가혹한 환경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섹터 별 전망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당장 가장 큰 시련을 맞은 섹터는 Growth Equity일 것으로 보입니다. 멀티플이 떨어지면 소위 오퍼레이션을 통한 실적 개선으로 기업가치를 견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아무래도 Control의 획득 유무가 중요하게 작용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는 Growth에는 분명 불리한 변화입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렸듯 지금은 벤처투자부터 Growth까지 모험자본 전반에 대한 Appetite가 하락한 상태인데, 잭팟의 성격이 뚜렷한 벤처와 다르게 상대적으로 중간자의 위치를 가진 Growth의 경우 어느 쪽의 수요도 충족하지 못하고 시장의 외면을 받을 위험이 높습니다. 여러모로 평소보다 더욱 정교한 투자 설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음으로 바이아웃 시장을 바라보면, 지금 가장 전략적으로 가치가 높은 매물은 비상장 + 펀더멘탈 좋음 + Control 획득이 가능한 매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제 머릿속에는 Carve-out 매물이 떠오릅니다. 욕심 많고 세상 물정 아직 잘 모르는 대기업 3-4세들의 캘린더가 곧 골프약속, 저녁약속으로 빡빡하게 채워질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1-2천억 정도 규모의 비상장 중소기업의 인수도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장은 value creation에 집중해서 매물을 가다듬은 뒤 향후 경기가 호황기로 회복하는 시점에 돈을 회수하는 시나리오는 IRR 관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대형 상장사에 대한 Special situation 전략을 쓰기에도 괜찮은 환경으로 보입니다. 주가도 많이 하락했을 것이고, 드라이파우더가 많이 남은 펀드의 경우 애매한 매물 몇 개 소수지분으로 건드리는 것보다 이럴 때 알짜 대형 매물 하나를 잘 들이는 것이 IRR 관점에서나 펀드레이징 관점에서나 여러모로 유리할 수 있습니다.

상술한 여러 섹터와 달리, 크레딧은 지금이 소위 최고의 ‘꿀통’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요소가 지금 크레딧 시장에 순풍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크레딧은 금리 인상의 직접적인 수혜 대상입니다. 이미 많이 올라간 금리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향후 금리가 급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에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크레딧에게 유리합니다.

금리가 오르면 급전이 필요한 기업이 늡니다. 이미 금리가 많이 높아진 지금, 한국 및 아태지역은 위기 기업을 대상으로 Vulture Investment 전략을 펴기 최적의 환경입니다. 최근에 KKR이 태영 그룹을 대상으로 완벽한 사례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태영그룹 골수의 주인은 KKR이 되었지만, 여전히 시장에는 양질의 크레딧 매물이 많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굳이 Vulture 전략이 아니더라도, SK 그룹 등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부채전략을 사용한 대형 그룹의 척수에 굵은 빨대 하나 꼽을 기회 정도는 잘 찾아보면 아직 꽤 남아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인프라의 경우에도 APAC에 국한해서 보면 여전히 매력적인 섹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글로벌로 보면 지난 1년 동안 꽤 큰 침체를 겪었지만, APAC의 경우 아직 인프라가 최근의 가파른 성장세에도 불구 전체 대체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에 불과합니다.

또한 인프라의 경우 APAC이 북미/유럽에 비해 아직 더 많은 개발의 여지를 갖고 있으며, 인프라계의 메가캡인 중국/인도/중동산유국 등의 존재나 여전히 존재하는 ESG 정책 등은 훈풍이 멸종한 지금 시기 인프라 섹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줍니다.

이번에 글을 준비하면서 PE가 시장의 거시적 변화에 대비하여 한 펀드 내에 다양한 투자 전략을 갖추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상황이 오기 전부터 Credit이나 Special situation 팀을 미리 셋업해놨던 몇몇 메가 pe들의 움직임이 새삼 매섭고 기민했음을 느낍니다.

반면 중소 PE 관점에서는 결과적으로 지난 호황기에 펀드의 규모를 충분히 키워 놓았는 지가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기존에 쌓아둔 체급이 큰 펀드의 경우, 다양한 전략을 통해 지금의 시장에도 여러 기회를 발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중소PE의 경우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데에 더 큰 재정적 제약이 발생합니다. 보통 이럴 때는 어떻게든 괜찮은 PF를 꾸려서 상황을 타개하는 길을 모색할 텐데, 건설업PF를 중심으로 PF에 대한 이미지가 전반적으로 악화된 것이 이중고로 작용하는 듯 보입니다.

지난 역사적 호황기에 대형 펀딩의 성패는 아마 대부분이 한끝 차이, 혹은 시점의 얄궂은 어긋남으로 갈렸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바로 그 차이로 혈관이 막힌 PF 대신 블라인드펀드의 활용을 시도할 수 있는 지의 여부가 갈렸을 거라 생각하니 섬뜩합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런 시기에도 그 한끝의 패자에게도 역전의 실마리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모두에게 힘든 시장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모든 역사가 언제나 으레 그랬듯 플레이어들은 답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들이 제시할 놀라운 해법을 기대하며, 이만 이번 분기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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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의 봄_가능성과 시사점

지금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는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입니다. 어도어의 모회사 하이브가 민 대표의 경영권 침탈 의혹을 제기하며 시작된 이른바 ‘민희진 사가’는 시작부터 대단히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그녀가 지난 4월 25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미디어 역사에 남을 2시간의 열변을 토한 이후로는 세간의 모든 이목이 어도어 사옥을 향해 빨려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흥미로운 주제이고, 눈 여겨 볼 가치가 있는 사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번 민희진 사가를 흥미롭게 지켜본 입장에서 느낀 바를 간단히 공유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의문인 ‘과연 민희진은 어도어를 하이브로부터 탈취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저의 의견은,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입니다. 일단 직관적으로 하이브와 민희진 측의 지분율이 각 80%와 20%로 너무 차이가 크긴 하지만,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분석을 시작해 보았습니다.

지분율이 20%에 불과한 민 대표가 쿠데타를 성공할 수 있는 케이스는 사실상 (1)뉴진스를 데리고 나와서 회사 차리기 (2)제3자 배정 증자로 하이브 지분을 녹여버리기의 두 옵션이 유이합니다.

먼저 (1)전자의 경우, 하이브와 어도어의 실무진이 뉴진스 멤버들과 민희진 대표와 계약할 당시 단체로 엑스터시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 가능할 리가 없는 옵션입니다. 뉴진스는 금일 기준 데뷔한지 고작 647일이 지난 신인 걸그룹입니다. 신인 계약이 일반적으로 7년 여를 맴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지금 시점에서 뉴진스 멤버들을 어도어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뉴진스 멤버들과 민 대표 모두의 계약에 위약 시 동종 활동 금지의 조항이 들어갈 가능성이 100%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첫번째 경우의 수는 사실 고려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두번째 옵션인 (2)제3자 배정 증자만이 민희진 대표에게 주어진 패인 셈인데, 이 부분도 법리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상법418조는 주주가 가진 주식에 따라서 신주를 배정받을 권리를 보장합니다. 예외가 되는 것은 “정관이 정한 바에 따라서” “회사의 경영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경우입니다. 일단 여기서 대부분의 경우의 수가 무효화됩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예외를 생각해본다면, 민희진 대표가 (1)정관을 개정하고 (2)부득이한 경영상의 필요에 대한 법률적 논리를 마련한 경우가 있겠습니다. (1)정관 개정의 경우 총사원의 2/3가 동의하면 할 수 있는 것이니 가능할 ‘수도’ 있고, (2)법률적 논리 마련 역시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일단 가능하다고 넘어가 봅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99.9%의 가능성이 소멸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사회에서 제3자 배정 신주발행에 성공했다고 가정한다면, 민희진 대표의 쿠데타는 이제 9부 능선을 넘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이브는 즉각 신주발행무효의 소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주발행의 무효는 신주 발행일로부터 6월 내에 소만으로 주장이 가능합니다. 당연하지만, 주주는 경영 상의 법률적 이해관계를 가집니다. 따라서 법률적 다툼이 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거의 100% 하이브가 이깁니다. 상법 제424조는 신주발행유지청구의 요건으로 “현저하게 불공정한 방법에 의한 주식의 발행”을 유지청구의 조건으로 언급합니다. 따라서 민 대표가 증자를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법적으로 방법이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법률적으로 패배가 확실한 싸움에 기사에 언급된 GIC나 PIF가 돈을 넣을 까닭은 전혀 없습니다. 자유인 민희진이 엔터를 차린다고 하면 그들이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을 넣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런 경우가 아니기에 애초에 하이브의 막대한 지분을 녹일 증자 자본을 끌어들일 유인도 전무합니다. 따라서 민희진 대표의 쿠데타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물론 매각의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하이브가 정말 정신 나가지 않는 이상 할 일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희진 대표가 정말 쿠데타를 원했다고 믿으려면 단 한 가지 경우만 남습니다. 그건 민희진 대표가 정말 극단적으로 자본 논리와 법률 논리에 무지한 경우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그녀가 극단적으로 멍청한 경우입니다. 저는 그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합니다. 민 대표 본인도 상당히 명석하고, 그 주위 모든 회계사/변호사가 부정행위로 라이선스를 얻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니 말입니다. 따라서 저는 민희진 대표가 쿠데타를 도모했다는 하이브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녀와 하이브 사이에 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계기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의 노골적인 표절이었을 수도 있고, 방시혁 의장과 민희진 대표 사이의 신경전이었을 수도 있고, 추가적인 금전적 보상을 원하는 민희진 대표와 하이브 사이의 갈등이었을 수도 있고, 언급한 셋 모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할까요? 저는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작금의 사태가 시사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총 세 가지 시사점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번 민희진 사가는 <1>이사회 장악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례입니다. 원래 하이브는 이경준CFO 등 하이브 측 인물을 어도어 이사회에 앉혀 놓았으나, 작년 신뢰의 명목 하에 어도어 이사회에서 발을 뺐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하이브 측에 최악의 수로 작용했습니다. 이사회가 손에서 빠져나가고 깜깜이가 되자 지분을 80%나 들고 있는데도 불구자 회사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력을 상당부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항상 상대방이 뒤통수를 칠 위험에 대한 방지책은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여기서 의리나 도의에 지나치게 기대는 것은 아마추어의 태도입니다. 이번 일은 그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번 일은 엔터 업계의 고유의 리스크인 <2>loyalty risk가 나타난 사례입니다. 엔터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이 산업이 기본적으로 시스템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회사의 core operating asset이 그 회사의 시스템이 아니라 길게는 7년, 짧게는 3년만 묶여 있는 몇몇 개인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특정 회사의 핵심 영업 자산이 30년 리스도 아니고 3년 단기 렌탈이라면, 게다가 성공할수록 렌탈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구조라면, 그 회사는 멀티플 디스카운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이브의 특유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은 그를 상쇄할 최선의 대안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지금의 하이브를 있게 한 것은 단연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입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하이브의 대표적인 Investment Highlight으로 손꼽혔던 것은 하이브 특유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영입하되 그들에게 미리 독립권을 주고 그것을 홀딩스 구조로 소유하자.’ 하이브는 이러한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통해 회사의 핵심 영업 자산을 시스템 그 자체로 규정할 수 있게 하는 근거로 작용했고, 수년 간 뛰어난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러나 이번 민희진 사태는 그것의 불완전함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까지 드러냈습니다. 불완전함의 경우 이번 사건의 발발 그 자체로 설명되는 바이니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제가 언급한 구조적 결함이란, 민 대표가 언급한 표절(plagiarism)의 이슈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을 통해 뉴진스의 특성을 레퍼런스 삼아 신규 걸그룹을 런칭한 것은 유니클로나 자라가 히트 상품을 참고하여 신규 상품을 제작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저 시스템에 쌓인 자산을 활용했을 뿐입니다. 사실 르세라핌 등 다른 아이돌 그룹에게도 그런 레퍼런스의 향기는 항상 난다는 점에서, 이번 민 대표의 반응을 너무 과민하다고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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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민 대표의 문제 제기는 멀티 레이블을 구성하는 레이블이 생각보다 시스템 구성원으로의 정체성보다 개별 entity의 정체성이 더 강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법적으로는 당연히 개별 entity입니다. 그게 지금까지는 어떻게 잘 묻어가듯 문제가 없는 분위기였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일을 계기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 생각만큼 깔끔하지 않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은 <3>하이브의 포트폴리오 관리 능력이 여러모로 기대보다 훨씬 부실함을 드러냈습니다. 이번 민희진 대표 관련한 일은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계약서를 더 꼼꼼이 써서든, 이사회를 장악해서든, 애초에 민희진 대표에게 더 큰 지분을 안겨줘서든, 이번 사태는 미연에 방지가 가능했던 불상사였습니다. 따라서 일단 이 사건이 터진 것 자체가 하이브의 역량이 기대보다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더더욱 아쉬운 것은 하이브의 사후 대처입니다. 하이브는 여론전을 하는 데에 있어 마타도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듯 보이는데, 정녕 이것이 최선이었나 하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갈등이 생기자 제대로 된 프로세스도, 정확한 물증도 없이 일단 자극적인 흑색선전부터 내보내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는 이게 정녕 한국 1위 엔터기업의 수준인가, 하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제가 민희진 대표를 상당히 옹호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민희진 대표가 무고한 피해자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녀가 지금 보인 일련의 행보는 상당부분 자본 윤리를 위반하며, 일부는 아주 악의적입니다. 많은 분들이 환호한 그녀의 화끈한 기자회견 역시 컨텐츠는 좋았으나 상당 부분 연출된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었기에, 그녀가 당연하지만 많은 대중이 보는 것처럼 그렇게 막연하게 순진한 인물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장에서 내놓은 작심비판은 모두 유의미했습니다. 하나같이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고, 민 대표의 아티스트적/산업적 역량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듣던 대로 인물은 인물이었습니다.

이번 일은 절대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민 대표는 절대 이사회 소집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하이브는 임시 주총을 열어 민 대표를 해임하고자 할 텐데, 그를 통해 민 대표를 해임하는 과정에만 몇 달이 걸립니다. 그렇게 해임을 하면, 민희진 대표는 해당 해임 건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의 소를 포함하여 베일에 가려진 계약서 상 옵션들에 대해서도 법적 타당성을 따지려 들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일이 늘어나다 보면 모든 과정이 종료되기까지 기나긴 법정 싸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하이브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는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방시혁 의장이 레이블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하이브의 책임자를 해임하고 민희진 대표와 서로 양보하여 좋은 합의점을 찾기를 기대합니다. 그게 민희진이라는 1조 이상 가치를 지닌 재능을 잃고 그녀와의 기나긴 법정싸움으로 대중의 피로감을 쌓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책임자에게는 미안할 수 있지만, 조조도 그렇게 왕후의 목을 베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의견이고, 실제로 이렇게 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은 대형 사건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엔터 산업이 한단계 도약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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