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TECHTREE/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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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한때 유행했던 "수저론"처럼 운명처럼 정해진 것일까요? 아니면 부자들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요?

부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부모의 재력보다 본인의 그릇이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부모가 아무리 많은 부를 이루었고 그것을 물려준다 할지라도 본인의 그릇 크기가 그것을 담아낼만큼 충분치 않다면 결국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쏟아내 버리겠죠.

그래서 본인이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는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를 담아낼 그릇만 튼튼하고 충분하다면 비록 흙수저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오랜시간 후에 결국 부를 많이 담아낼 수 있는 것이죠.

몇십억원 이상을 증여나 상속으로 받았거나, 아니면 하던 사업이 대박이 났거나 하여 벼락 부자가 된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10년 이상 지켜내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교육 과정에서 돈을 버는 방법만 가르칠 뿐 돈을 간수하고 키우는 방법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금융맹으로 살아갑니다. 더구나 풍족해지면 자만하고 나태해지고 방심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그러한 마음가짐이 그릇을 더 단단하게 하거나 키우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돈을 담는 그릇을 단단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첫번째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돈을 뜨겁게 사랑하되 집착하지는 말자."

사랑하되 집착하지 말라뇨? 사랑과 집착은 한끗 차이 아닌가요? 하며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돈을 사랑하는 일은 돈을 버는 행위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그 성과로 인해 자연스럽게 돈이 모이게 만드는 것이고, 집착하는 것은 물불 안가리고 정도에 어울리지 않는 방법으로 오로지 돈만을 쫓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늘 여유가 있습니다.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돈 앞에서 욕심을 버리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집착하는 사람은 돈 자체가 목적이기에 돈 앞에서 늘 초조하고 성급하며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소비성향에 있어서도 차이를 두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에 대한 보상과 성과에 중점을 두기에 자신이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반면 돈에 집착하는 사람은 돈 자체가 목적이었기에 그 것이 달성되면 공허한 마음에 돈을 쉽게 사치하는데에 써 버립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사람의 그릇에는 언제든 돈이 넘치고 돈에 집착하는 사람의 그릇에는 돈이 항상 메말라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더 중요한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릇을 단단하고 더 크게 만든다 할지라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그 그릇에 돈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운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운은 어떻게 오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죠. 관계 앞에 이익을 따지지 않고 언제나 웃는 얼굴과 진정성으로 상대를 대하고, 또 본인 스스로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를 나눌 수 있을만큼 좋은 사람이 되어야 운도 따르고 기회도 온다고 봅니다. 그렇게 그릇을 키우려는 노력과 운이 만나서 큰 부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최근 투자자산 하락에 밤잠을 설치실 분들 많으실텐데 인생은 깁니다. 누구에게나 다시 또 기회는 옵니다. 이번의 실패를 거울 삼아 다음 기회에는 더 나은 성공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오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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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륜수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강방천 회장이 돈을 벌 수 있었던건 IMF 때 우량주가 아니었다는 사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향후 삼전과 카카오가 쉽게 무너질까요??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이렇게 추천할 수 있는건 다른 주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죠.(심리적으로 큰도움이 됨)

특히 삼성전자는 괜찮은 가격대로 보입니다. 그런데 카카오는 큰 시세를 낸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좀 더 기간조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부자가 되신 분들은 우량주를 사서 되었을 가능성 보다 스몰캡을 사서 부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입니다. 그런 스몰캡이 시간이 지나서 우량주로 진화했을테고요.

언론에 보이는 모습보다도 그 이면의 모습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슬쩍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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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점점 다큐멘터리가 되어 간다(3)

원/달러 환율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고치까지 올라왔다.

하루에 환율이 1%씩 뛴다는 얘기는 외국인들이 채권 팔고 다 나간다는 얘기다. 환율이 이렇게 뛰면, 외국인 채권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한국 채권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환율과 금리, '양빵'에서 다 터질 리스크가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조만한 우리나라 국채 금리가 크게 오를 거 같다. 외국인들이 채권 던지고 나가면, 받아줄 때가 없어서 시장 금리가 뛸테니까 말이다. 금융통화위원회 멤버들은 이제 '한-미 금리 역전'을 고민할 필요도 없어졌다. 시장에서 다 셋팅 해놓은대로 기준 금리 올리면 된다.

근데 오늘 누가 날 잡았냐? 최근에 이렇게 무시무시한 뉴스가 하루에 동시다발적으로 나온 적이 있었냐?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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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삶 너무 어렵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구요... 지금의 시기는 어떻게든 버텨내시길 기원합니다...

이 말이 어떻게 전달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부디 지금의 주식시장뿐 아니라 지금의 일상에서 버텨내주시길 바랄뿐입니다...

구독자 여러분의 안녕을 기원드립니다!

#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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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엄청난 자료들을 공유합니다. 멋진 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창작에 관심있는 분들께는 큰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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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50~60년대 버핏파트너십 시절.

버핏은 확신이 있었음.

순유동자산보다 낮게 평가받는 기업들(소위 netnet) 지배지분을 확보 후 청산하면.. 이건 백퍼 남는 장사다!

스승 벤자민 그레이엄에게 초저평가주식들 배웠고. 그 중 지배구조 취약한 기업들을 소위 발라주기로 결심.

그래서 파트너십에 30~40%정도를 이런 기업으로 깔고 감.

샌본맵, 뎀스터밀, 커먼웰스 등등 지인들과 지분 긁어모아 표대결들어가서 회사 해체분리 -> 고수익 근간.

유동성도 없어서 그냥 맘대로 가치평가(비상장처럼). 시장 빠질 때 아웃퍼폼 -.-:

...

Buy the dip.

실제 버핏은 바이더딥 별로 안했음. 찾아보면 거의 안 한 것 같다.. 말로만 남들이 두려워할 때 blablabla

가이코도 70년대 지배지분 인수(이것도 cb로 들어감) 후 나머지 지분매입할 때 초기가격대비 수십배 비싼 가격에 90년대 후반들어 백퍼 인수(모든게 확실해졌을때).

코카콜라야 말할 것도 없고.. 당시 1988년 per 18배에 진입. 물론 이후 동유럽, 중국 시장 열리면서 주가는 10배 폭발.

애플도 2016년 조정기에 조금 사고, 2017년 신고가 칠때 왕창삼. 이후 3배 이상 폭등.

이번 옥시덴탈도 보면. 주가 바닥일때 20~30불에 널부러져있을때 안 사고, 40불 치솟을때 더 올려서 샀음.

공통점은?

주주환원 + 장기전망

모두 경영진의 마인드가 적극적인 주주환원파로 바뀌는 시기. 그러니까 아.. 바닥은 잡혔구나 + 적절한 멀티플.

에 지른 것. 물론 ibm 같은 건 이런 스킴으로 질렀다가 실패.

...

안전마진을 가격에 두느냐. 주주를 배신하지 않을 기업의 퀄리티에 두느냐.

손자병법의 고수는 전쟁을 이미 이겨놓고 시작한다는 의미가 이런 게 아닐런지.

p.s. 반성하고 있다는 말. -.-:

#Eunwo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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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이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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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전쟁을 보아하니 신재생에너지는 더욱 중요해지겠구나싶다
인터넷에서 어떻게 옷을 사?

이커머스가 개화하던 시기에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역으로 인터넷에서 태어난 패션 브랜드가 오프라인까지 먹으려 하고있다.

국내 이커머스 업체의 PB 중 가장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무신사의 '무신사 스탠다드'가 그 주인공. 무신사 스탠다드는 회사의 영업이익을 책임질뿐 아니라 오프라인 땅따먹기의 선봉장이다.

작년 홍대에 첫 매장을 냈고, 이번엔 강남대로에 두번째 매장을 열었는데 초반 흥행은 성공적. 무신사의 오프라인 매장은 1)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무신사에 대한 구체적인 인상과 경험을 남기고, 2) 충성 고객이 신제품을 입어보거나 온라인에서 산 제품을 픽업하는 접점이다.

기존 매장들과 가장 차별화된건 피팅룸. 조명색을 바꿀 수 있으며, 휴대폰 화면을 미러링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등이 있다. 피팅룸을 옷만 입어보는 공간이 아니라 인증샷, 숏폼 콘텐츠를 찍는 공간으로 확장시킨 것.

한창때는 매 시즌마다 국민 패션을 만들던 'SPA 브랜드'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남성 라인부터 무신사가 야금야금...

#슬랙스는연간100만장이상팔림 #여성라인과아동라인도있음

#정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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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예술이 쇠퇴한 이유 1: 조화 과잉 사회의 역설>

내 소개를 먼저 하겠다. 전공은 정치학이며, 대학에서는 정치와 행정 분야의 과목을 주로 강의한다. 최근에는 한일의 정치·행정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비교 연구하고 있다.

소개를 먼저 한 이유는 이 글의 테마인 ‘일본 문화’는 나의 전공분야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일본에서 30여 년 생활하면서 느끼고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그 위에 얄팍한 지식을 덧씌워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미리 고백하기 위함이다.

한류의 열풍으로 도쿄의 신오쿠보는 한국거리로 둔갑한지 오래되었으며,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의 슈퍼나 편의점, 음식점, 패스트푸드점 어느 곳에서든지 손쉽게 김치를 비롯한 한국 요리, 한국 상품을 접할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김치 냄새, 마늘 냄새난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

내가 일본에 첫발을 디딘 30여년 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한국의 경제력과 민주화가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진전되고, 한류로 대표되는 K-POP, K-DRAMA, K-MOVIE, K-FASHION, K-FOOD 등의 문화 예술 분야의 공헌이 매우 크다.

반면, 일본은 과거 20세기 한 때 아시아를 석권하고 서구 유럽 국가에도 아시아 하면 일본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국제적 위상을 뽐냈지만, 현재 과거의 영화는 꼬리를 감췄다. 아래로 깔보던 한국을 의식하고 노골적으로 견제해야만 하는 입장에 몰리게 되었으며, 문화 예술 등에서는 한국의 뒤꽁무니만을 바라봐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사실에 주목하며, 이번 글에서는 일본 사회의 변천 등을 중심으로 예술・문화 산업 쇠퇴(정체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지만) 원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문화 예술에 전문성을 바탕으로 분석하는 글이 아니다. 일본에서 생활인으로 30여 년을 살며 느끼고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분석글이다. 따라서 주관적인 이해와 판단이 개입되어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80년대 어수선한 한국과 동경의 대상이었던 일본 문화

내가 20대 청춘을 보낸 1980년대를 회상해본다. 당시 한국은 88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대대적인 인프라 정비 등 건설 붐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반면 정치, 사회적으로는 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에 저항하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투쟁이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다.

60년대 이후, 장기간 이어진 군부독재 종식과 대통령 직선제 등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재야, 시민사회에 대해, 신군부 정권은 강압적으로 이를 제지하고 통제했다. 이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시내 곳곳에서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경찰과의 투석전으로 부서진 보도블록이 난무했다.

그런 숨막히고 가슴 답답한 시절, 20대 청춘이었던 나에게 한줄기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 일본 문화였다. 일명 ‘망가’로 불리는 일본 만화를 비롯한 비디오, 음악 테이프, 잡지 등을 통해서 선진국인 일본의 문화를 간접체험하면서 심리적 오아시스를 찾았다. 하지만 이런 일본 문화도 자유롭게 접할 수도 없었다.

일본 문화는 퇴폐적 왜색문화를 조장한다는 낙인이 찍혀 전면 수입・유통이 금지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끓어오르는 탐구심과 넘쳐나는 충동적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던 치기 어린 청춘은 금지된 즐거움과 쾌락을 찾아 청계천과 을지로 주변을 배회하며 이를 즐겼다.

영화 ‘친구’를 보면 부산과 일본을 오가는 보따리 장사를 하며 일본에서 가져온 19금 비디오테이프를 학생들끼리 몰래 보며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그 시절 되겠다.

당시 일본은 엄청난 경제력과 위상을 자랑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였다. 에즈라 보겔(Ezra F. Vogel) 하버드대학 교수의 『Japan as Number One』(1979)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세계는 일본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일본의 성공 스토리를 떠받드는 책으로 일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일본의 기세는 드높았다. 머지않아 미국도 추월하여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는 것이 아닌가 하고 회자될 정도였다.

당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아시아의 4룡(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이라는 말에 고무되어 오로지 성장에만 주력하던 시절이었고, 그 정점에는 일본이라는 롤모델이 존재했다. 일본은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 잡지 등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도 아시아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도 이런 시대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더구나 수입・유통 금지라는 족쇄가 채워진 터라, 더욱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런 일본 문화를 흡수하며 탐닉했다.

일본어를 몰라도 길거리 리어카에서 판매하던 일본 엔카와 제이팝 테이프 몇 개 정도는 소장했다. 엑스재팬, 쇼넨타이, 히카루겐지, 핑크레이디, 미소라히바리, 테레사 텐 등의 음악을 주로 접했다. 노래 가사의 의미는 제대로 모르지만 긴기라기니, 코이비토요,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가와노나가레니 미오마카세 등을 읊조리며 따라불렀다.

여대생은 일본 패션잡지 논노를 끼고 다니면 뭔가 트랜드에서 앞서가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었고, 세계적 대히트 상품이었던 소니의 워크맨을 갖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 나는 소니보다는 값이 저렴한 아이와의 제품을 줄창 끼고 다니며 일본어와 일본 노래를 듣고는 했다. 그 시절엔 그랬다.

이는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지금의 50, 60대 세대에겐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젊은 시절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만큼 일본은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아시아 국가에서 지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일본은, 나 같은 젊은이에게 과거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라는 역사를 공유한 극복과 경계의 대상인 동시에 경제와 문화 등에서 한국을 앞서가는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이율배반적인 이상한 나라였다.

90년대 일본에 살면서 느낀 문화 충격과 위용

나는 1990년 4월부터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유복한 집안의 유학생이 아니었기에 뭐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지만, 그 덕분에 10여 년간에 걸친 유학생 시절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일본의 서민 문화와 하층 문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

당시 내가 느낀 일본은 소문대로 선진국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80년대를 휩쓸었던 버블 광풍이 꺼지며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이긴 했지만, 아직 잘나가던 시절의 여흥이 깨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도쿄의 롯본기, 긴자, 아카사카, 신주쿠를 중심으로 한 홍등가는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는 불야성의 위세를 떨치고 있었고, 흥청망청하는 분위기와 열기도 남아 있었다.

음악을 비롯한 망가, 애니메이션, 드라마, 게임, 출판 등 문화 콘텐츠 산업도 여전히 번창하고 있었다. 연일 TV에서는 당시를 풍미하던 고무로 데츠야라는 다재다능한 음악 프로듀서의 지원하에 제이팝 여신으로 등극하는 아무로 나미에 열풍을 전달하기 바빴으며, 이는 일본은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아무로 신드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분야도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변되는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의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드래곤볼, 에반게리온, 도라에몽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주말과 평일의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고, 이에 수반한 많은 캐릭터 산업도 전성기를 맞았다. 닌텐도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대표되는 게임 엔터테인먼트 분야도 활황을 띠고 있었다.

일본 TV에선 심야시간이 되면 이국땅에서 독수공방하며 궁상을 떨어야 했던 외로운 유학생의 심경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19금의 심야방송으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낮시간에는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예술, 오락의 문화 콘텐츠가 다양해 정신적으로 매우 풍요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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